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1979년에 10.26 사태로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고 되고,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게 되었다. 1980년대 정권은 박정희 정권 이후의 신군부 체제로, 여전히 독재와 검열, 억압의 시대였지만 이와는 상반되게 경제는 3저 호황으로 국민 소득이 상승했으며 3S정책이나 컬러TV의 영향으로 문화가 새롭게 펼쳐진 시대였다. 전두환 정권은 야간 통행금지 해체, 서머타임제 시행, 기념일 제정 등의 정책을 통해 시간 정치를 하였다. 국민들의 이러한 ‘시간정치’ 속에서 많은 변화들을 겪었다. 이러한 시간정치는 국민들에게 ‘자율’을 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가에게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시간’은 1880년대와 1890년대 무렵부터 사용되었다. 고종은 근대적 시간체제인 양력 도입을 통해 조선이 자주국이자 근대 국가로의 개혁 의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근대적 시간 체제의 초기였던 조선시대 말과 대한제국 시기에는 나라 상황처럼 여러 시간체제들로 혼란을 겪었다. 수업 중에 본 1908년 1월 1일자 황성신문에는 하루가 서력, 청나라 연호, 일본 메이지, 구력, 순종연호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날짜를 나타내는 방법이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처럼 혼란스러웠던 시간체제는 조선이 식민지 체제가 되면서 근대화 , 식민화를 통해 점차 정착되었고 현대의 시간이 되었다.
현재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일과 공부도 하고, 여가 생활 및 자유 시간 등의 일상을 살고 있다. 이렇게 하루를 24시간으로 나타낸 것은 근대적 시간체제이다. 저자는 시간을 근대적 시간체제와 사회적 시간으로 이야기하였다. 근대적 시간체제는 어느 공간, 어느 사회에서든지 동일하게 측정되고 분할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일상 사이에서 함께 경험한 시간제도, 체제, 관념을 의미하는 사회적 시간은 다양하고 다면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의 일상을 통제하고 새롭게 조직하여 사회적 관계를 재생산한다. 즉, 시간은 사람마다 동일한 듯 보이지만 사회적 시간이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사람마다 일상이 다르기 때문에 24시간은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따라서 ‘시간정치’가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시간 주권’이라는 말을 통해 권력이 되었고, 자원화 되었다. 1980년대의 전두환 대통령은 ‘시간 주권’을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서 여러 제도를 통해 국민들의 일상 시간을 조절해서 국민에 대한 통치를 편하게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전두환 정권 이전의 박정희 정권은 근대적 시간체제를 전통적인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여기고, 자본주의와 규율을 함께 결합해서 보았다. 이러한 사회적 시간은 산업화와 함께 ‘근면’을 중심으로 이야기되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은 자신 이전의 모든 정권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며 자신의 정권이 새 시대라고 선언하였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24시간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50년도 되지 않는다. 야간 통행금지는 조선 개국초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전두환 대통령이 해제하기 전까지 시행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전두환 정권에서는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했다. 야간 통행금지 제도의 철폐 주장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통치권자, 즉 대통령이 야간 통행금지 제도를 자신의 통치에 유리하게 행사 한다는 것이 가장 주된 이유라고 생각하였다. 대통령이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대통령의 의무에 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들의 시간을 통치권자가 조절할 수 있고, 즉, 시간 주권이 국민 자신들이 아닌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하였을 것 같다.
1980년대에 야간통행금지 제도 철폐는 88올림픽 유치 덕분에 공론화 될 수 있었다. 야간통행금지 제도의 해제는 88 올림픽을 통해서 이야기되었다. 이에 대한 야간 통행금지 해제 주장의 첫 번째 이유는 ‘국익’이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 올림픽은 전 세계 축제이기 때문에 당시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큰 원동력이었다. 따라서 정권은 이것을 위해 야간통행 금지를 포기하였고 마침내 해제하였다. 두 번째 이유는 신군부 정권의 기본 정신이었던 기본권 신장과 국제화로의 나아가기 위한 개방 정책을 위해서였다. 신군부는 야간통행금지 해제를 행복권 추구를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으며 올림픽 즉, 국제 세계에 한국을 잘 살고 있는 나라로 보여주기 위해 시행하였다고 한다. 나는 야간 통행금지가 행복 추구권 뿐만 아니라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하였다. 자유권은 헌법에 명시되지 않는 자유권이라도 보장되어야 하는 만큼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권리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야간 통행금지는 국민이 시간에 관계없이 거리를 다닐 자유를 침해한 것 같다. 세 번째, 정권은 국민에게 올림픽을 이유로 야간 통행금지를 폐지하면서 자율을 강조하였다. 신군부 정권은 ‘올림픽 담론’을 통해 올림픽 시민으로서 사람들에게 자율을 이야기하였고 이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가졌다. 그리고 야간통행금지와 함께 학원 자율화 해외여행 자율화 등의 자율과 관련된 정책을 펼치면서 대한민국이 독재, 군부의 비정상적인 나라가 아닌 ‘정상적인’ 나라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많은 국민들이 야간 통행금지 폐지를 염원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의 폐지는 국민의 힘이 아니라 또다시 통치권자가 국가의 필요를 이유로 결정하였다. 나는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한 세 가지 이유를 읽으면서 당시의 통치권자가 루소의 사회계약론처럼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필요성을 위해 사람, 국민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야간 통행금지 폐지를 국민을 생각해서, 국민의 필요성이 아니라 국가의 필요성을 위해서 국민의 염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24시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 40년이 채 안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1980년대 시간 정치의 하나로,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사람들은 변화를 겪었다. 먼저, 24시간 통행이 가능해지면서 심야 유동인구가 증가하였고 24시간 대리운전 등의 새로운 사업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노동 형태는 현재의 2교대, 3교대의 형태로 변화하였고, 학생들은 야간 자율 학습과 심야 학습을 하게 되었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사람들이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나 취미를 누릴 수 있는 여가 시간이 늘어나서 사람들이 일상이 조금이라도 여유로워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도 야간 통금의 해제가 심야시간을 ‘노동의 시간’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아간통금 해제로 인해 수면시간은 더욱 줄어들었고 대신 학습 시간 및 노동시간이 늘었다. ‘표 3-4 1980년대 노동시간과 자유시간의 변화’를 보면 일 시간에 비해 자유시간은 너무 적게 늘어나거나 1987년에는 아예 줄어든 것을 보았다. 이렇게 늘어난 시간만큼 정말 노동을 많이 했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저자는 하루 24시간을 노동시간과 자유 시간으로 배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가 개인의 선택이었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였지만 궁금한 것이 생겼다. 1980년대의 사람들은 개인의 소득증대를 위해 일상에서 노동 활동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러면 1980년대와 같은 상황에서 요즘 사람들은 어떤 생각, 선택을 할지 궁금하였다.
신군부 정권은 1980년대의 국민들은 ‘자발적 발전주체’라고 여기며 그들을 이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정권에 방향에 따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은 넓어진 시간을 자신의 위해 사용하려고 하였다. 사람들은 TV를 시청하는 등의 여가활동을 하였고 소비 패턴에서는 선택적 지출 비용이 많아졌다. 야간통행금지라는 한 가지의 ‘시간정치’가 사람들의 노동, 학습 환경과 소비, 여가 생활 등 여러 일상을 바꾸었다.
전두환 정권은 중산층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했다. 노력의 일환으로 정권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중산층 육성책을 운영하였다. 이렇게 키워진 중산층들은 국가의 산업화에 기여하였고 자신을 위해 노동시간을 투자하여 소득을 쌓았다. 중산층 육성책이라는 정책으로 중산층들이 중산층 의식과 함께 탈정치화와 민주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인해 1980년대는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들과 같은 민주화 운동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정권의 군부와 전두환 정권의 신군부 정권은 국가주의, 군사주의를 펼쳤다. 일제강점기부터 미군정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국민들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활동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는 박정희 정권이 되면서 더욱 강해졌다. 박정희 정권은 1968년에 1.21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과 미국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등으로 인해 남북 안보 위기가 고조되면서 박정희 정권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을 군사적으로 더욱 이용하였다. 등화관제 훈련이 시행되었고 1980년대에는 학교에서 교련과 학도호국단이 운영되었으며 현재처럼 남성들은 군복무를 하고 향토 예비군, 민방위군으로 활동하여야했다. 그리고 국가주의를 통해 일체감, 획일적인 조국, 민족에 대한 충성을 국민들에게 계속해서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국기 하강식, ‘국기에 대한 맹세’, 반공 교육 등을 시행하였다. 이후 1980년 신군부 정권은 야간통행금지 해제를 시작으로 여러 자율화 정책을 통해 ‘자율’을 이야기하였다. 국민들은 이제 ‘자율’에 대한 교육을 받는 주체가 되었다. 이를 통해 신군부는 자신들이 자율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라는 정당성을 확보하였다. 나는 당시 국민들에게 ‘자율’이 정말 자율의 의미를 담고 있던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국민들은 계속해서 정권으로부터 국가주의, 군사주의를 강요받아야했고, 이것은 국가에 대한 맹세와 교실 내에서의 태극기로부터 볼 수 있다.
국가는 언론 통폐합으로 언론을 통제하려고 하였다. ‘표 6-1’에서 언론 통폐합으로 인해 KBS와 MBC로 흡수된 방송사들을 볼 수 있었는데 통폐합 이전에 정말 다양한 방송사들이 있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많은 언론사들 중에 내가 아는 것은 KBS, MBC, CBS 밖에 없었다. 이렇게 언론사가 다양하다보니 국가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을 것이고 국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통치가 어려워서 언론 통폐합을 통해 KBS, MBC 만 운영했을 것 같다. 그리고 야간통행금지 폐지와 함께 사람들의 시간 속에서 TV 시청이 늘어나면서 언론을 통제하는 것은 정권의 선전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국가는 24시간 동안의 국민들의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국민생활시간조사’를 하였다. 시간은 하나의 자원이 되었고, 정부는 이러한 시간 자원을 사회적으로 개발, 동원하고 규제, 통제하려고 하였다. 대한민국은 1981년 KBS에서 처음으로 ‘국민생활시간조사’를 시행하여 아직까지 하고 있다. ‘국민생활시간조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시행하였는데, 저자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는 조사의 초점을 여가시간 활용 등의 소비 중심으로 보고 있고, 공산주의 국가는 조사의 초점을 경제 개발을 위한 계획을 중심으로 두고 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조사 목적은 국민의 총 일상시간을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순간 ‘우리나라의 조사의 초점이 공산주의 국가와 더 가까운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었고, 당시 한국이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여서 그랬을까하는 생각도 하였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의 시간을 모두 국가의 시간 자원으로 이야기하였다. 즉, 개인의 시간이 개인 것이 아니라 국가에 속한 공공의 시간으로 취급되는 것으로, 나는 이것이 개인이라는 존재의 소외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권은 ‘국민생활시간조사’를 이용하여 국민들의 일상 시간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정권은 텔레비전 편성을 통해 국민들의 일상을 조절하였다. 1980년부터 가정 고교 방송이 시작되었고 1981년부터 컬러 방송이 정규화 되었으며, 교육 전문방송과 아침방송이 다시 나타났다. 먼저, 나는 고교 교육방송이 오전 5시 30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에서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방송이 편성되었다는 것은 24시간의 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이 이른 시간부터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의 선택인 자의일 수도, 국가가 노동자에 대한 근면 이데올로기를 외치면서 일어난 타의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컬러 방송이 정치적, 사회적 이유에 따라 시행 시기가 정해졌다는 것이 정말 의외였다. 나는 컬러 방송을 내보낼 기술이 안 되어서 국민들이 시청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컬러TV 생산 능력도 존재하고 수출을 하고 있었던 중에 정치적 이유 때문에 내보내지 않았다는 것에서 정치적인 요소라는 것이 우리 삶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다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컬러 TV는 방송프로그램을 더욱 화려하고 대형화시켰고, 편성이 확대되는 영향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컬러 방송이 나오게 되면서 아침방송이 재개 되었고 이것은 국민들의 일상시간을 재구성하였다. 아침 방송은 교양, 교육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저자는 이러한 아침방송이 국민들에게 빠르게 스며들었다고 하였다. 아침방송이 왜 국민들의 일상으로 빠르게 들어갔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아침 방송이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1980년대부터는 고정적인 뉴스가 편성되었다. 현재는 KBS를 기준으로 현재 오전 6시, 오전 9시 30분, 오후 12시, 오후 2시, 오후 7시, 오후 9시 뉴스를 고정으로 편성되고 있는 것 같다. 여러 뉴스 편성들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9시 뉴스를 메인 뉴스라고 생각하고 시청한다. 이러한 9시 뉴스는 1976년부터 고정적으로 편성되었고, 저자는 이를 두고 텔레비전 뉴스가 ‘일상적 규칙성’을 확보했다고 이야기하였다. 9시 뉴스가 최초로 고정 편성된 뉴스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고정 편성된 이후로 현재까지 유지되어서 사람들이 메인 뉴스 시간으로 자각되어 있는 것을 통해 1980년대의 사람들의 일상 시간과 현대 사람들의 일상시간이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는 1980년대 아침 방송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고 이를 통해 정권은 시청자들, 즉 국민들에게 국가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선전활동에서도 이득을 보았다. 뉴스 속에는 국가 내외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들, 국가의 정책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1980년대나 현재나 똑같은 것 같다. 비록 지금은 ‘팔도강산’이나 ‘대한뉴스’ 등의 노골적인 정책 선전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코로나에 대한 국가의 방역 정책이나 국회 또는 청와대의 말을 이야기하며 은근한 선전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권, 통치자는 ‘시간정치’ 즉, 나라의 시간 독점을 통해 효율적인 통치를 할 수 있도록 국민들의 시간을 조절하였다. 국민들이 가장 많은 피로감을 느꼈을 시간정치라고 생각되는 서머타임(일광절약시간제)이 시행되었다. 서머타임은 에너지 절약을 위한 취지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각 정권은 자신들의 통치 효율과 국가를 위해서 시행했다. 서머타임을 통해 미군정은 작전상의 편의를 얻었고, 그 이후의 정권들은 국민동원을 하였다. 그러나 서머타임은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들의 시간이 복잡해지면서 일상생활 패턴이 무너졌고, 노동시간은 더욱 늘어나게 만들었다.
나는 통치자의 ‘시간 정치’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법정 기념일 혹은 공휴일을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저자의 말대로 기념일, 국경일은 국가의 정체성과 주제성을 명확하게 드러나게 해준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이번 정권이 어떤 이념이나 정신을 중요시여기고 주로 어떤 정책이나 행사를 펼칠지 생각해보게 된다.
1980년대는 법정공휴일의 내용과 일수가 가장 많이 변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러한 법정공휴일과 함께 우리나라에는 임시 공휴일이 있었는데 정권은 이것을 국가가 국민 동원 혹은 위무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국민들은 임시 공휴일인데도 불구하고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임시 공휴일을 지정해서 국민동원을 했던 것에는 무엇이 있었을지 생각해보았다. 1980년 당시에는 올림픽 개막식 날을 임시 공휴일로 만들어서 개막식 관람에 국민을 동원한 것이 있었고, 현재에는 ‘선거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것이 국민동원의 일종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비록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우리는 선거가 일어나기 몇 달, 혹은 몇 년 전부터 국가에게 선거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국가는 선거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서 국민들이 투표를 하게끔 유도한다.
5월에는 다양한 법정 기념일이 있다. 현재에는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스승의 날, 어버이날이 법정기념일로 규정되어있다. 표 10-1을 보니 1980년에는 어버이날은 아직 법정기념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위에 말한 모든 법정 기념일이 기념일의 주체를 존경하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특히 스승의 날은 그늘의 개혁하기 위해 만든 기념일이었다는 것이 정말 생각하지 못한 것이어서 의외였다.
1980년대의 시간정치는 다양한 정책을 통해 시행되었다. 야간통행금지 제도 폐지와 서머타임, ‘국민생활시간조사’, 법정 기념일 등이 모두 시간정치였다. 이러한 시간정치는 하나를 시행하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일상에서 여러 가지를 변화시킨다. 시간정치는 1980년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 현재에도 여전히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의 시간정치는 대표적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카페나 식당을 10시까지만 이용하는 것과 예전에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났을 때의 요일별 마스크 배급이 있는 것 같다. 시간정치를 통해 국가가 국민을 동원했던 1980년에는 시간 주권을 통치자가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국가 속에서 생각되었다. 그러나 점차 개인과 국민들의 요구들이 반영되는 사회가 되어가면서 시간 주권도 국민, 개인에게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직까지 시간주권이 모두 국민에게 있다고 말을 하지도 못하고, 시간 주권이 모두 국민에게 오는 것이 좋은 것인지, 어떤 영향을 끼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개인은 하나의 ‘시간 정치’를 통해서도 많은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생활 패턴, 시간을 움직일 수 있는 국가의 정책에 국민의 의견은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