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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연주하는 한 피아니스트의 인생 이야기
저자/역자
알레산드로 바리코
출판사명
비채
출판년도
2018-08-10
독서시작일
2022년 11월 10일
독서종료일
2022년 11월 12일
서평작성자
조*현

Contents

[노베첸토], 여러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는 초호화 여객선 빅토리아호에서 태어난 한 피아니스트의 이름이다. 노베첸토는 연료실에서 일하는 대니 부드만에 의해서 발견된다.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이. 일등석 칸에 위치한 피아노 위에 올려진 작은 아기를 대니는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노베첸토는 버림 받은 아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버린 친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자신의 아이가 일등석 내 손님에게 발견되어 좋은 집안에 입양되기를 원하는 그들의 마음은 노베첸토를 향한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표현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날 때부터 여객선 내 피아노 위에서 있었던 그는 단 한 번도 배를 떠나본 적이 없었다. 그저 여객선 내에서 피아노를 치며 사는 것이 그의 행복이었다. 여객선 손님들의 노베첸토의 연주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라 평했다. 그 구절을 읽으면서 눈을 감고 노베첸토가 연주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음악이 들리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눈에 아른거렸다. 모든 손님에게 감동을 주는 노베첸토의 음악을 나도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세상의 힘듦을 잊고 그의 연주에 따라 나의 몸과 마음을 맡기고 싶었다. 

서평을 쓰며, 이 책의 화자이자 노베첸토의 친한 친구인 팀 투니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빅토리아호 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음악가였다. 팀은 노베첸토와 상당히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살면서 육지를 밟아 본 적 없는 노베첸토와 달리 여러 곳을 다니면서 연주를 하는 사람이었다. 팀은 그런 노베첸토를 안타까워 했다. 세상은 넓고 경험할 것은 많다. 팀에게는 여객선 안에서만 지내는 노베첸토의 젊음이 소비되는 것이 참으로 아쉬운가 보다.

여객선에만 머무르려고 하는 노베첸토를 보니 나의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그만한 세상에서 자신의 삶에 안주하기만 하고 밖으로 나가보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점.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왠지 그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하니 나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경험해보지 못한 불쌍한 인물일까. 그럼에도 나는 노베첸토를 이해한다. 자신이 살아온 모든 것을 부수고 나와야 하는 게 얼마나 버거운지, 무서운지 공감한다.

노베첸토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젤리 롤 모턴과의 피아노 경합에서 우세한다. 팀은 최고의 피아니스트와의 연주를 할 만큼 재능있는 그가 배에서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그가 육지로 내려갈 것을 계속 설득한다. 여객선을 나서는 것은 두렵지만 세상이 궁금했던 노베첸토는 결국 육지로 내려가는 결정을 내렸다. 삶의 터전인 배를 떠나 한 칸 한 칸 계단을 내려오던 노베첸토는 갑자기 저 너머에 있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팀은 내려오지 않는 그가 이상해 보였다. 몇 계단만 내려오면 육지임에도 노베첸토는 다시 계단을 올라 배 안으로 들어갔다. 팀은 그런 그에게 나무라듯이 왜 그랬냐고 물어봤다. 노베첸토는 이렇게 말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고.
처음에 본 세상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아 두려웠다고. 피아노는 88개의 선반으로 시작과 끝이 있지만 세상에는 끝이란 게 존재하지 않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 다는 게 무척이나 두렵다는 것이다. 노베첸토가 본 지평선은 끝점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정해진 여객선 내에서 88개라는 유한한 선반을 가진 피아노를 치며 시작과 끝이 분명한 연주를 하면서 살아온 그에게 세상은 무서운 곳이었다.

이 장면을 읽으니 코끝이 시려웠다. 학교라는 곳을 떠나면 정말 끝이란 게 없는 세상에 던져질 나에게 노베첸토가 느낀 두려움을 나 또한 느낄 수 있다. 세상은 정해진 게 없다. 내가 무슨 직장을 다니고, 누구와 만나고, 어디를 가는지는 순전히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만약 선택을 잘못 한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인생의 끝점인 죽음에 다가가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해야 할까? 무한한 세상에서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해진 게 없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모두는 노베첸토가 될 수 있다. 얼마나 두려운 세상인가.

노베첸토는 끝내 육지로 내려가지 않았다. 용기내지 못한 노베첸토는 자신의 삶을 바꾸지 못했다. 전쟁으로 인해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던 빅토리아호를 바다 한 가운데서 폭파한다는 소식에 팀은 노베첸토에게 육지로 내려가자는 그의 말에도 노베첸토는 배와 함께 폭파되는 것을 선택한다. 빅토리아 여객선과 그의 피아노는 그의 인생의 전부이다. 그가 이 모든 것을 잃고 잘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용기는 그에게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빅토리아호 여객선과 함께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다.

대학교 3학년, 어쩌면 학생으로서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노베첸토의 삶은 공감을 불러오면서 그와 달리 세상에 나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생과 세상은 끝이란 게 없고 불행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 다가오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인생에는 행복과 즐거움, 행운으로 가득 차있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곁에 있는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오히려 자신의 불행에 더욱 반응하며 자신의 삶을 절망 속으로 밀어붙인다. 세상이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노베첸토처럼 세상을 끝이 없는 두려운 곳이라 생각한다면 그런 삶을 사는 것이고, 즐거운 곳이라 생각한다면 남들 보다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럼에도 노베첸토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는 용기가 없는 겁쟁이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지키려고 한 수호자이다. 그가 바다 한가운데서 생을 마감하는 것도 그의 인생의 일부였던 것이다. 남들과 똑같은 인생을 살 수는 없다. 자신만의 인생이 있는 것이다. 노베첸토는 아름다운 바다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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