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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스를 죽게 만들었는가
저자/역자
헤르만 헤세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09-01-20
독서시작일
2022년 08월 01일
독서종료일
2022년 08월 03일
서평작성자
전*우

Contents

한스라는 어린 아이의 비범함을 알리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그는 보잘 것 없는 시골마을에서 자랐으며 그 곳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기계공이 되거나 서기일을 진로로 삶게되고 범죄나 약을 하는 소년들도 많은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도 그 마을에서 굉장히 세련되고 우아한 느낌이 들고 깔끔한 거리와 인자한 웃음과 여유를 지닌 사람들이 사는 게르버 거리, 그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아갈만한 가죽공장, 그리고 어떠한 범죄가 생겨나면 의심부터 받고 많은 소동들과 죽임을 당했던 매의거리. 한스는 어릴 적 헤르만 레히텔하일이란 매의 거리에 살던 친구에게서 낚시를 배웠다. 물론 하일은 낚시 허가도 받지 못해 몰래 밤낚시를 하곤 했던 존재였다. 그가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에도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 기억이 한스에게는 정말 오래가는 기억이 됐다. 그는 라틴어 학교를 진학하였고 거기서 단연 최고의 성적을 내며 1등자리를 항상 석권하던 수재였다. 그는 아버지와 마을 목사, 교장 선생님에게 큰 신임을 얻고 그들의 요구와 강요대로 살며 신학교에 진학할 준비를 하였다. 신학교를 가기위해 치른 주시험에서 한스의 긴장감은 극에 달하지만 어떠한 어른도 한스의 상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가 주시험에서 전체 2등이란 높은 성적으로 합격하여 기쁨을 누리고 방학을 즐기기도 잠시뿐. 어른들은 신학교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미리 공부를 시켰고 한스는 그에대한 불만이 없었다. 한스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오로지 성공한 인물이 되어 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기 원하는 것. 그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 탓에 친구를 사귀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는 모범생 중에 모범생이었고 모두들 그와 친하진 않았지만 그를 싫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하일러는 달랐다. 신학교에 대한 배척감도 존재하였고 우울증이 존재하지만 시조를 적으며 그 우울증을 해소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면서 문제아로 낙인이 찍혔으나 그는 생각보다 천재의 소질이 있어서 상위권을 차지하길 원하진 않았지만 하위권도 면하는 성적을 내보이곤 했다. 힌딩어라는 같은 방에 사는 아이가 사고로 죽어나가는 모습을 본 한스는 하일러에게 의지를 하였고 하일러는 한스를 돌보기도 하고 자신의 푸념들을 늘어놓기도 하며 한스에겐 중요한 우정의 관계로 정의지어졌다. 그러다 하일러의 우울증이 극에 달하고 말썽을 일으켜 퇴학을 당하자 한스의 심신에는 더욱이 큰 문제가 생겨 휴학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자살계획을 세웠으나 나아지는 과정에서 한스는 우울증이 생겨났고 마을에서 놀러온 엠마라는 여성에게 마음을 뺏겼으나 엠마는 그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슬픔을 잊고 현실에 맞서 기계공으로 취업하여 수습 기계공의 일을 하다가 어렸을 때 친구와 주말에 술을 마시고 시체로 발견된다.

이 책은 헤르만 허세의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더 픽션화 시켜서 만든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허세는 신학교를 다니던 도중 심신미약의 판정을 받고 신학교를 휴학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주인공인 한스와 굉장히 유사한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즉, 허세는 자신의 글이 자신을 치유하게 하는 힘이자 삶의 의미와 목적이 된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인물을 투영하여 \’나에게는 이러한 삶의 의미가 있어서 이러한 지옥같은 삶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에 경우에 한스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쓴 글 같았다. 이 소설은 19세기 독일의 교육문화를 그대로 반영하였다고 각광받았는데, 실제로 신학교등 고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그 어린아이들이 희생되며 성장해 왔던 것이다. 지나친 경쟁구도와 아이를 가두는 교육 방식을 꼽아 지적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교육문화의 양상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겪고 있는 바와 다른 점이 없다.

그렇다면 한스는 사고로 죽은 것일까? 자살로 죽은 것일까? 책에는 한스는 강물에 흘러가고 있었다고 묘사하며 이마와 양 주손에 상처가 있다고 적혀있었다.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다. 그 때 한스는 생애 최초로 만취라는 것을 하였고 자신의 몸을 가누기 힘들정도 였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이 사건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이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고 사인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핵심을 봐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가 괴로워했고 그가 왜 그런 정신상태가 되었으며 그런 것들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정도의 청소년이라고 봐야한다. 그런 아이를 보호해주는 문화가 전혀 없었던 것일까? 이 책에서는 그의 빛나는 외모와 재능에만 치중해서 글을 시작한다. 근데 정작 소년의 정신상태는 처음부터 많이 지쳐보이고 힘들어했다. 그들은 왜 그를 채찍질만 했던 것일까? 아버지도, 마을 목사님도, 교장 선생님도, 신학교 교장선생님과 타 선생님들 까지 말이다. 사실 언어적으로 따지고 보면 그들은 한스에게 어떠한 폭언도 한 것이 없었다. 그들은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애썼고 한스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면서 가르쳤다. 이게 한스에게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을 일으킬 것이라 자신들도 알지 못하였다. 한스는 어렸을 때 부터 많은 일들이 있었다. 죽어나가는 친구, 죽은 토끼, 돌아가신 어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스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한스가 자신을 치료하고 자신을 돌아볼 능력도 주기 전에 히브리어를 읽고 라틴어를 일그며 그리스어와 독일어의 문법을 공부하게 했으니까 말이다.

모든 사람들은 감정이 존재한다. 그 감정에 있어서 만큼은 충분히 기쁨을 만끽할 시간과 슬픔을 이겨낼 시간이 필요하다. 그가 다른이보다 총명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이러한 권리를 빼앗겼다고 볼 수 도 있다. 그들은 그저 한스가 보내는 신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다 그가 정신쇠약의 판정을 받고 신학교를 휴학했을 때에야 그들은 더이상 한스가 대단한 일을 해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교육이라는 것과 학습이라는 것. 그것의 상호작용에서 교육이 학습을 지배했을 때 이러한 현상들을 일련의 과정과 함께 적어낸 듯 하였다.

나 또한 학생시절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많은 경쟁과 시험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학업을 이행해왔다. 한스처럼 특별나서 모두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런 아이들을 선망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는 내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나에게 준 축복일 수 있단 생각을 하게 해준 고마운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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