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학생들이 공감하겠지만 우리나라 학교의 역사 교육은 근현대사를 잘 다루지 않는다. 역사책은 늘 시간순서대로 구성되어있기에 현대사는 책의 끝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방학이 가까워지거나 종업이 가까워질 때쯤 수업진도는 현대사에 가까워지게 되고, 대충 읽고 넘어가는 흐름을 탔다. 나는 늘 그런 학교 수업방식에 불만 아닌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식으로 수업할거면 현대사는 역사에서 아예 빼버리지.’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현대사가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닐 텐데 왜 자꾸만 과거에 집착하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시간순서대로 사건을 나열하지 않고 가까운 역사부터 담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박종철과 6월항쟁
전두환 정권은 학생운동을 철저히 봉쇄하려했다. 시위진압 경찰을 아예 대학 내에 상주시키고 시위 움직임이 시작되면 바로 봉쇄하였다. 이를 초동진압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기에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기 위해 경찰이 잡아가기 힘든 옥상, 난간 등 높은 곳에 올라가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의 그 처절한 심정이 공감되었다. 정부를 대상으로 개인이 싸운다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는데 당당히 맞서 싸운 학생들이 대단해보였다. 이 책에서는 경찰들이 학생들을 얼마나 강력하게 진압하였는지 아주 상세히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그 내용들을 읽으니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학생운동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왜 그토록 화를 냈는지도 알 거 같았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일 때, <1987>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었다. 박종철을 다룬 영화였는데 그때는 학생운동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했었다. 뭣도 몰랐지만 아주 유명한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말은 알고 있었고 그저 재밌어보여서 역사적인 측면이 아니라 스토리 흐름에만 집중하며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나의 역사적 안목이 16살 때보다는 성장했으리라 믿고 이번 여름방학 때 그 영화를 다시 보았다. 민주주의 잔혹사 책을 읽으며 영화를 보니 정부의 압박과 부검하는 의사들의 진술, 기자의 노력 등, 확실히 내가 16살 때는 보지 못했던 내용들을 이제는 볼 수 있었다. 위에서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기 위해 경찰이 잡아가기 힘든 옥상, 난간 등 높은 곳에 올라가서 시위를 벌였다고 적어두었는데 영화 1987에서도 학생들이 버스 위에 올라가서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7쪽의 “진실은 물론 언젠가는 드러난다. 그러나 그냥 드러나지는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번민과 용기 있는 행동, 사실을 확인하려는 치밀한 노력이 있어야 드러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민주화운동가 김정남이 야당의원과 접촉해 축소조작에 대해 밝혀달라고 말했는데 그는 큰 부담을 느끼고 오히려 거꾸로 자신을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사정해왔다는 내용을 봐도 진실을 밝히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사의 경로는 각 개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다.
–박영두와 삼청교육대
앞의 박종철부터 박영두까지 경찰과 교도관 등 소위 권력 계층의 사람들의 만행들은 너무나도 악랄했기에 책을 읽으면서 눈물도 나고 화도 났다. ‘과연 세상에 선한 사람이 존재할까?’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던져보았다. 사람은 사회적 분위기나 상황에 맞춰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영두 사건의 이야기를 읽었을 무렵,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 떠올랐다. 이 실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재 우리 사회의 경찰들이, 군인들이 무력을 쓰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사회에서 그러한 것들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 구성원들이 권력자들의 통치에 순응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는 순간, 우리는 다시 과거의 통치지배 하에 살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삼청교육대는 정말이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게 정말 교화를 위해 필요한 행위였을까? 이렇게 과도한 처분을 내릴 만큼 그들이 불량하고 불온한 시민이었는지,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삼청교육대에서 진행한 행위들은 너무나 비인격적이었다.
그들은 옹달샘이라고 불리는 얼음장을 깨고 알몸으로 물속에 들어가는 활동과 겨울매미라고 불리는 나체 상태로 장시간 나무에 매달려 있게 하는 기합 등을 진행하였다. ‘옷’은 한 사람의 상징이라고 배웠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나치즘이 비인격적인 이유도 사람들의 옷을 모두 벗겼기 때문이다. 옷은 한 사람의 상징이다. 옷을 벗게 되면 한 사람이 나타낼 수 있는 고유한 특성까지 벗겨내는 것인데 삼청교육대에서는 나체로 장시간 나무에 매달려있도록 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전두환 정권은 이 방식이 비인격적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전두환은 이러한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삼청교육대사업은 사회정화 운동의 일환으로 ‘불량배 척결’이라는 명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기준이 모호하며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볼 때 불량해보이거나 주민들로부터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이 검거대상자였다. 이것은 국가의 마음에 안 들면, 또는 주민들의 사적인 감정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삼청교육대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하나의 목적이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폭력을 학생이나 종교인, 일반 시민들에게 과시하지 않고 이른바 ‘불량배’로 낙인찍힌 사람들에게 행사함으로써 시민들의 반발은 줄이고, 공포심과 권력은 어필하려는 정책이 아니었을까.
–책임지는 정부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1968년은 매우 중요한 해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 청와대 습격사건이 있었고 그로부터 이틀 후인 23일에 푸에블로호 사건이 발생한다. 1968년은 베트남전쟁이 한창 가열되고 있었을 때이다. 북한은 김일성의 능력과 미국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선전하기 위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을 활용한 것이다. 푸에블로호에는 여러 정보 장치들이 있었고, 북한은 이들로부터 군사적으로 대단한 가치가 있는 정보를 얻을수도 있었지만 북한은 선원들을 선전적 목적에 활용하려했다. 미국이 북한이라는 나라를 공식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은 미국의 북한 말살 기도를 좌절시키고 ‘민족해방혁명’에 중요한 성취를 달성함으로써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거둔 빛나는 승리로 선전되는 것이다. 11개월간의 노력을 통해 북한이 얻으려고 한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자신의 국호를 불러주고 인정해주는 것이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4장에서는 ‘승리하는 정부보다는 책임지는 정부’라는 소제목의 내용이 인상 깊었다. 미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굴욕을 당하고 패배한 것처럼 보였지만 어쨌든 자기 나라의 선원들을 무력의 사용이나 또 다른 인명의 희생 없이 성공적으로 구출해왔다. 생명과 안전, 평화를 위해 국민에게는 승리하는 정부보다 시민의 안위에 대해 진정으로 걱정하고 책임지고 보살피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말이 와닿았다.
–가난한 장교와 5ㆍ16 쿠데타
5ㆍ16 쿠데타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은 군개혁을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반공과 한미동맹의 강화를 강조했고 자신들이 몰아내려고 했던 정군 대상자들을 내세우고 다시 포용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행동은 거사의 성공 가능성을 높였지만 자신들이 세웠던 개혁 논리를 스스로 변질시키고 배반하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정군운동이 장면 정부의 부패와 무능으로 좌절되었기 때문에 쿠데타가 불가피했다는 주장은 승자에 의해 역사가 어떻게 선택적으로 기록되고, 기억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내용을 읽으면서 과연 역사가 믿을만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역사는 때때로 특정 계층에게 유리하게 기록되기도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제대로 된 역사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마산 할머니와 4월혁명
앞의 동일방직 사건에서도 서술하였듯이 약자들은 기록에서 배제된다.
역사 서술은 남겨진 기록에 의존하는데 기록은 대단히 남성주의적이다. 권력이 있거나, 엘리트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스스로 기록을 많이 남기고,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아 많이 기록되지만 빈민들은 그렇지 못하다. 주변부의 약자를 기록하지 않는 역사는 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역량을 실현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고 차별과 무시 속에서 소진시켜버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좀 더 숨겨진 역사, 숨겨진 인물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211쪽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부정선거 사실을 인정하고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해 적극적인 시정조치를 취했다면, 대규모 유혈사태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퇴하는 길로 치닫지 않았을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있었다고 서술되어있다. 그가 이러한 혁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통령직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는 것이 답답했다. 이승만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있는 학생들에게 금일봉을 주며 빠른 쾌유를 바란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이라는 영화도 생각이 났다. 이승만 정권은 영화뿐만 아니라 연설, 언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민들의 인식 자체를 조종하고 통일하려했던 것 같다.
–학살된 민간인과 한국전쟁
근대는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단어를 외치며 계급, 계층 간의 갈등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시기다. 1951년 2월 또는 3월 경, 군인들은 산청군 외공리에 있는 소정골에 민간인들을 내리게 했고, 그들을 매장했다. 군인들은 남쪽의 국군이 확실하지만 어느 부대 또는 어느 기관인지 지금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고 적혀있었다. 2000년을 전후해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고, 진상규명 운동이 전개되었다. 학살자들은 대부분 굴광식 목탄요에서 희생당했다. 병사들이 모두 카빈소총을 소지하고 활동한 것으로 보아 매우 잘 편성되고 정제된 부대라고 할 수 있다. 즉, 일반적인 국군 부대라기보다는 무언가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는 부대거나 새로 신설된 부대라고 생각된다. 학살당한 사람들은 북한에서 온 사람이 아니었음은 확실했다. 이들이 입고 있는 옷에 적힌 글자나 학교 이름 등을 볼 때 서울이나 인천, 경기도 지역 사람들로 보이고 대부분 지식인 또는 중산층이었을 것이다.
한국 전쟁기 지리산 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지리산의 눈물>과 2008년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해인 2009년 3월 외공리 소정골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진주 MBC 다큐멘터리팀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형평운동도 진주에서 진행되었었고 이러한 정황들을 보았을 때 진주는 오랫동안 자유와 평등에 맞서 싸운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243쪽에서 작가는 외공리 학살처럼 잘 파헤쳐지지 않은 문제들을 기억하고, 진상을 규명하려 노력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길일지 아니면 때로는 “망각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말처럼 그냥 잊는 것이 나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파헤쳐도 뚜렷한 결론도 나지 않고 오히려 증오감과 적대감만 증폭되기에 파헤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작가의 의견과 동일하게 기억하고, 진상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해자 또는 유가족들의 입장에서도 이러할지에 대해서는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세월호 사건만 봐도 초기에 유가족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오랜 싸움은 그들을 지치게 만들었고, 커다란 정부의 은폐 또는 밝히기 어려운 진실을 아무리 수면 위로 드러내려 노력해봤자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체념한 듯 보였다. 실제로 이제 제발 좀 그만하라며 세월호 얘기를 더 이상 안 듣고 싶다고 말한 유가족들도 있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프지만, 역시나 정부를 국민이 이길 수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개개인은 사건을 파헤칠 힘이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진실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는 원치 않은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역사를 새로이 정의하려다가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지 그 여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돌아온 학병들과 학병동맹 사건
마지막 장에서는 해방과 돌아온 학병들에 대해 다루었는데 1943년 일제는 전세가 다급해지자 이른바 ‘학도특별지원병제’를 발표하고 전문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및 대만인 학생들을 전쟁에 대거 동원했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에게 놀랍게 다가온 것은 이공계나 사범계 학생들은 계속 공부할 수 있었지만 문과계 학생들은 지원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책에도 ‘문과계 공부는 전쟁 상황이 급박할 때 잠시 중단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라고 서술되어있었는데 여성과 빈민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문과와 이과에 대한 차별이 이 당시에도 존재하였다는 것이 사뭇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학병 동원은 ‘지원병’이라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동원에 가까웠고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마자 돌아온 학병들은 ‘학병동맹’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학병동맹 사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우리나라 정부에 의해, 우리나라 경찰에 의해 많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국 근현대사의 가려진 이름들, 가려진 실정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시간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기록된 역사\’만을 학습하고, 그것에만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을까? 과거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미래에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 역사를 복합적으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보는 힘을 기르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