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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크레인이 비싸게 여겨지지 않는 그 날까지
저자/역자
정세랑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15-12-07
독서시작일
2022년 06월 21일
독서종료일
2022년 06월 21일
서평작성자
강*영

Contents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공개되면서 원작에도 관심이 눈에 띄게 늘었다. 주변 친구들이 보고 재밌었다는 반응이 많아, 나도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다.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소설 제목을 보고, 나는 처음에 익숙하고 친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할 것 없는 직업과 평범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범한 소설 제목과 달리, 내용은 신선했다. 주인공 보건교사 안은영은 한 손에는 비비탄 총 한 손에는 장난감 검을 들고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들과 항상 싸우며, 학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기존 소설에서 쉽게 찾을 수 없던 신선한 캐릭터로 독자의 흥미와 상상력을 이끈다. 또한,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나는 아픔을 지닌 인물과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가로등 아래, 김강선

어느 날 중학교 동창인 김강선이 은영을 찾아왔다. “은영은 반가워서 인사를 하려다가, 멀쩡해 보이는 중학교 동창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p.189) 과거 은영은 젤리를 보는 독특한 능력으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리고 강선은 은영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겐 그림자가 없었다. 오래전 강선은 죽었지만, 부서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다 은영을 찾아왔다. 그리고 강선은 은영에게 담담하게 자신이 죽은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크레인 사고였어. 넘어오는데 그대로 깔려버렸어. 멍청한 말이지만, 나는 그런 상황이 생기면 언제나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피하기는 무슨.” (p.189) 강선은 혼자서 아등바등 살려고 노력하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평소 은영은 사람을 해치는 젤리는 가차 없이 응징하지만, 때론 사연 있는 젤리는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은영은 강선을 따뜻하게 맞이해주었다. 이후 은영의 집에서 강선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은영은 아주 오랜만에 울었다.” (p.189)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고, 읽고 나서도 마음이 계속 불편했던 에피소드였다. 무엇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을까? 바로 <가로등 아래, 김강선>은 소설 속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비싸서 그래. 사람보다 크레인이. 그래서 낡은 크레인을 계속 쓰는 거야. 검사를 하긴 하는데 무조건 통과더라.” (p.189) 나는 이 말을 듣고, 강선이 우연한 사고로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보다 크레인이 비싼 사회에서, 크레인 사고는 언제든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최근에 한 기사를 보았다. 최근 5년간 부산항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죽은 사람만 4명이며, 노후 크레인이 원인이라는 내용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람 목숨보다 돈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평범한 이웃들이 하루 7명씩 집으로 못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과거 전태일 열사의 분신 항거 자살을 계기로, 열악한 환경에서 희생당하던 노동자의 삶이 사회 문제로 크게 주목받았다. 그리고 노동 운동 발전과 근로 환경 개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들이 생겨나고, 노동환경이 점차 개선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10월 11일, 지하철 설비 노동자 추락사”, “10월 12일, 크레인 작업 노동자 추락사”, “10월 13일, 건축 노동자 건축 자재 추락 사망”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근로기준법 등의 시행으로 노동 환경이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최근 연이은 택배 근로자들의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주목을 받으면서,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촉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은 “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사업장에서 종사자와 이용자가 안전상의 해를 입지 않을 의무를 지게하고, 이 의무에 반해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한 때에는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형사 처벌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를 두고 끝없는 규제에 기업들 질식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강선처럼, 크레인에 깔려 질식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문제의 본질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근로 환경에서 일할 권리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영자 측은 보다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 하고, 노동환경의 개선은 등한시되었다. 기업의 최종적인 목표는 ‘이윤 극대화’이므로, 이를 위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이론상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은 노동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사람보다 크레인이 비싸게 여겨지지 않는 그 날까지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해. 이 아이들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나을 거야.” (p.233) 라는 말처럼, 우리는 뒤에 오는 세대들이 우리보다 더 좋은 세상에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당연한 권리라고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은 우리가 이뤄낸 것이 아니다. 이전 세대가 꿈꾸었고, 싸웠고, 이겨서 얻어낸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더 나은 노동환경을 위해 싸웠던 이전 세대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반복되는 죽음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고,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사람보다 크레인이 비싸게 여겨지지 않는 그 날까지.

『보건교사 안은영』은 판타지 소설이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은연중에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김강선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나는 더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끝으로 나는 미래에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침묵하지 않고 관심을 계속 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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