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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간의 주인인가?
저자/역자
김학선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20-03-02
독서시작일
2022년 03월 02일
독서종료일
2022년 03월 07일
서평작성자
안*서

Contents

자연적인 시간에서 인위적인 시간으로 변모한 때는 과연 언제일까?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부터 ‘24시간 시대’라고 하는 시대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24시간 시대가 탄생한 1980년대의 시간성이 그 이전과는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지, 그것이 현재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소위 ‘시간 정치’라 명명하여 기존 물리적인 자연현상,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시간과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접근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24시간을 온전히 활용하는 시대가 열리고, ‘자율’이라는 개념이 이중적 의미로 여겨진 시대를 살펴본다. 그것은 비단 1980년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021년, 현재에도 충분히 통용되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새로운 정권이 구상하고 실현한 다양한 시간 기획을 분석한다. 그중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야간 통행금지제도 폐지’, ‘등화관제 훈련’, ‘국민 의례의 강화’, ‘TV 프로그램 편성’ 등이 있다. 이 기획들은 대한민국이 외적으로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자유 ‘처럼’ 보이게 하는 것들에는 ‘자율적 감시 체제’라는 새로운 통치방식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즉, 정부가 국민에게 자유를 허락한 대신 자율성이라는 것을 ‘의무’로 부과하는 셈이다. 이로써 정권은 국민을 ‘스스로 질서와 평화를 지키고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자발적 주체로 호명한다. 그렇다면 이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자연히 자율성을 가진 ‘국민’의 의식이 부족한 탓이 되어버린다.

“1980년대의 사회적 시간의 여러 주체의 대립과 경합과 타협에 의해 개발된 과정은 당시의 시간관념, 시간제도, 시간 체제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던 사회 갈등과 그 해결 과정, 그리고 권력의 작동방식과 여러 주체의 모습을 드러낸다.” (본문 237쪽)

한편으로, 저자는 1980년대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새로운 변화로 이끈 조건과 기제를 연구했다.  기존의 1980년대 담론이 주로 정치적인 세력들 간의 대립과 갈등을 조명했던 반면, 이 책은 ‘24시간 시대’라는 세부적인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 ‘국민’의 정치와 일상을 복원했다는 점이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니까 역사가 창조되는 공간으로서의 생활문화 영역, 이 공간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사람들 간의 행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한 것이다.

“근대적 시간은 타자와의 관계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위계화 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통치성에 의해 조직화하여 생체권력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개인에게 단계적으로 적용 가능한 ‘권력의 새로운 기술’로 역할 하게 되었다. (본문 15쪽)

그러나 책은 이러한 사실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혹은 놀라웠던 지점은 정부가 시간 정치로서 국민을 통제하려 했을 때 그에 대항하여 ‘평범한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섰는가? 에 대한 김학선의 관점으로 풀어내는 부분이다. 당시 사람들은 정부의 억압과 통치에 맞서,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80년대의 시간 정치에 억눌렸던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 주체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비판적으로 대응했던 그들의 에너지에 주목하게 된다. 비록 정부가 시간 자원을 통해 그들을 통제하려 했음에도,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 보다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생활과 문화를 영위해갈 하나의 ‘기회’로 삼았다.

“ 당시의 국민들은 허용된 24시간을 이용하고 실천하는 주체로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변화된 시간 이용의 자유와 경험을 자기계발과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본문 68쪽)

당시 대학생들은 학원 자율화 조치를 ‘학생운동의 활성화’ 계기로, 다른 일반인들은 자발적 애국심이 아닌 타율적 의례 요구가 지닌 부정성에 반발했다. 자율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그것이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국가가 말하는 자율적 주체 개념에 의문을 제기했고, 모든 강압적 국가 의례를 거부했다. 또한 서머타임제, 양력 일원화 체제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자율적 주체의 권리를 내세웠다. 세계시민의 견지에서 새로운 시간 규정을 받아들이라는 요구에 맞서 자신들의 생활시간과 일상시간의 중요성을 주장한 것이다.[3]

이로써, 1980년대는 복잡하고, 다양하고, 한편으로는 다채로운 시기였다는 것을 느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속내가 숨어있고, 또 그에 맞서 점차 주체적, 비판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재설정해가는 국민의 에너지와 희망에 더 주목하게 된다. 또한, 책을 통해 우리가 어쩌면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24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새롭게 정의해보고, 한 번쯤은 그 의미를 헤아려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에 펼쳐진 시간 정치와 그것을 둘러싼 투쟁의 결과로, 대한민국 국민은 시간 이용과 시간 개발의 자유를 얻게 되었고, 드디어 24시간 사회의 기초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투쟁의 과정과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을 것이다.

≪24시간 시대의 탄생≫은 시간 정치와 1980년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읽어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저자 김학선만의 언어와 글쓰기 방식을 통해, 1980년대의 시간성이 작금(昨今)의 ‘24시간 풀가동(완전가동)’사회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풍부한 통계 자료와 다양한 역사 문헌, 그리고 당대의 신문 기사 등의 자료를 통해 1980년대의 시간성을 촘촘하게 그려내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는 점도 책이 지니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통제하기 위해 시간을 이용하고, 돈을 더 받기 위한 시간을 아껴 일하며 살아가던 그 시대로부터 지금 우리는 얼마나 더 시간을 알차고, 의미 있게 사용하고 있을까? 나는 대한민국이 유독 ‘빨리빨리 민족’, 그러니까 늘 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살아왔던 이유가 어쩌면 ‘1980년대’의 시간 정치로부터 이어져 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의미 있게 만들고자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만들어왔다고 믿었던 ‘시간 관리’가, 어쩌면 1980년대의 정치,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아 나도 모르게 결정된 하나의 산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학선의 ≪24시간 시대의 탄생≫은 갈수록 빨라져 가는 시간의 기원을 이야기하며, 독자로 하여금 ‘시간’이 갖는 의미를 다시 되새김해 보게 한다. 우리가 어쩌면 올바른 길이라며 굳게 믿어온 시간 관리에 대해 책을 통해 참신하고, 또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21년에는 더는 ‘1980년대’의 정부와 같이 시간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방식은 사라졌지만, 지금은 외부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그렇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령 한병철의 ≪피로 사회≫와 같은 책에서, “외부의 권력에 의한 통제는 사라졌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이사 자아)이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고 소모하게 한다.”라는 분석을 한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이러한 관점을 채택한다면, 현재 우리가 ‘24시간’을 오롯이 자신의 소유로 여기는 것 자체도 어쩌면 ‘착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24시간 시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 책을 읽는 독자가 자신에게 던져보고 고찰해 볼 질문일 것이다. 과연 누가 시간의 주인인가? 인간이 시간을 지배하는가, 시간이 인간을 지배하는가? 우리는 과연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의문이 들었던 점은 왜 책의 구성에 ‘편의점’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다. 1981년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했고,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대의 막이 올랐던 편의점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연중무휴로 운영하며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과 늦은 밤에 활동하는 일명 ‘올빼미족’인 젊은 세대를 사로잡으며 급성장했다. 이 편의점 문화에 대해서도 자세히 탐구해본다면, 분명 ‘24시간 시대’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책 속에는 어디에도 편의점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저자는 ‘마치며’에서 밝혔듯이 1990년대 이후를 대상으로 시간의 가속화를 다음 연구 주제로 꼽고 있다. 1980년대의 시간성과 어떻게 연속되면서도 단절되는지, 시간을 둘러싼 역사 세력들의 경합은 또 어떻게 펼쳐지는지, 김학선의 관점으로 만들어나갈 다음 작업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어떻게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일명 ‘신기술 시대’를 대상으로 여러 소재들을 엮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그 결과물에는 ‘24시간 편의점’에 관한 내용도 꼭 다루었기를 바란다. 분명  ≪24시간 시대의 탄생≫만큼이나 꼼꼼하면서 정연한 또 하나의 노작(勞作)이 탄생할 것이라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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