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다. 교양 수업으로 7권의 소설 중 책을 하나 선정해서, 같이 그 책을 선정한 사람들과 조별로 책의 내용을 발표하는 과정을 진행했다. 줄거리만 들었을 때 총 7권의 소설 중 가장 흥미로워 보였고 갈 방향을 잡지 못하는 내게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책을 선정했었다. 그리고 이 책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많은 의미를 부여해준 운명 같은, 내 최고의 책이 되었다.
이 책은 무엇인가 기독교적인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신이 우리에게 운명을 정해주고, ‘표지’라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정해둔 운명이 무엇인지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것을 따라가느냐, 따라가지 않느냐는 우리의 선택이다. 책에서는 이것을 \’마크툽\’이라고 표현한다. \’마크툽\’이란 스페인의 언어로, 한글 번역은 없지만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다.’라는 뜻이다. 우리는 살면서 운명 같은 상황을 많이 만난다. 어느 사건이 일어나고 되돌아보면, 무엇인가 딱딱 들어맞는다. 이게 운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이 바로 마크툽이 아닐까. 책을 다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아대학교에 들어오고, 이 수업을 듣고, 이 책을 선택해 읽은 것도 바로 마크툽이 아닐까. 내 인생에서 어쩌면 신이 정해준 방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누군 가는 이러한 생각을 싫어한다. 운명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얽매이는게 싫다고. 운명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이 왠지 모르게 설렌다. 또 어떤 운명 같은 상황이 일어 날까하는 상상에 그런 설렘이 일어나는 것 같다.
책에서는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개념도 나온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처음에는 술술 잘 풀려서 그 일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초심자의 행운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초심자의 행운은 사라지고 시련과 시험밖에 남지 않는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던 일을 포기하고 안정적 생활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참고 견딘 사람은 자아의 신화를 이루게 된다. 자아의 신화가 뭘까? 그것은 우리의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엇 인가를 하고 싶고, 무엇 인가가 되고싶은 욕망. 그것이 자아의 신화인 것이다. 하지만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자신의 자아의 신화를 이루려고 하기 보다는 남들이 원하는, 세상이 원하는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책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양치기이다. 산티아고는 계속 새로운 길을 찾아 양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닌다. 하지만 양들은 새로운 길에는 관심이 없다. 목초지가 바뀌는 것이나, 계절이 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저 물과 먹이를 찾는 일밖에 모른다. 양들은 자아를 찾지 않는 사람이다. 양들은 물과 먹이를 찾으면 그저 행복하다. 하지만 양치기들은 새로운 길을 향하며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나는 처음에 양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나의 자아의 신화의 조각을 조금이나마 찾은 것 같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굉장히 즐겁다. 나는 옛날부터 내가 내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것은 아니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봉사하는 것이 좋다. 봉사하는 것이 뿌듯하고 재미있다. 의무론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진정한 선이 아니고, 진정한 봉사가 아닐 테지만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서 봉사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쪽에게 다 득이 될 때가 진정한 봉사의 모습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하는 봉사.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 이 대사가 이 책에서 유래한 것인 줄은 몰랐었다. 누군가에 입에서 나온 말과 책에 쓰여있는 말의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사실 나는 이때까지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되면 좋고 안되면 말지 식의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다. 이제부터 자아의 신화가 뭔지 조금 더 찾아보고자 한다. 조금 더 구체적인 목표 말이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정말 마크툽이다. 삶의 방향성을 잃은 친구들이 읽어보면 조금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