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혐오라는 단어는 결이 아예 다른 단어 같지만, 그저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 막은 너무나도 얇아서 생각보다 쉽게 벗겨진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사랑과 혐오는 둘 다 \’관심\’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관심을 주는 것, 즉 그것이 내 인생의 어떠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김이환의 소설 <절망의 구>에서는 이와 같은 사랑과 혐오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닮아가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한지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풀어낸다. 또한 그는 절망의 구라는 허구적 도구를 사용해 인간의 심리를 깊게 파고든다.
어느 날 거리 한복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구가 나타나고, 사람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구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인간은 \’절망\’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절망이므로 구에 집어삼켜진 사람들은 극심한 공포감에 떨게 된다. 구의 개수가 점차 늘어나 더 이상 인간이 피하기 힘든 상황이 되고,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다 구에 잡아먹히게 된다. 그렇게 오직 주인공인 김정수와 남자 한 명만이 세상에 남게 된다. 그 둘은 구를 피해 도망치다 만나, 몇 달 간 함께 생존해 온 동료이자 친구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계가 그렇듯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맞지 않는 부분이 늘어 갔고, 다투는 횟수가 쌓여 갔고, 결국에는 서로를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생존을 위협하는 극단적 바깥 상황 때문에, 각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관계는 더욱 빨리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 둘은 더 이상 함께하지 않기로 하고, 각자 생존해 나가기로 합의한다. 완전한 타인이 된 그들의 태도 돌변은 인간의 무관심과 냉철함을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날 주인공과 남자가 말다툼하던 도중 남자마저 구에 잡아먹히게 되고, 세상에는 정말 김정수 혼자만 남게 된다. 김정수는 남자가 구에 빨려들어가고 난 뒤, 며칠 동안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남은 세상 속에서 남자를 미치도록 그리워한다. 심지어는 친한 친구, 부모님보다 더 그리워한다. 동료였을 때 남자가 김정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구해다 준 감기약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다. 그렇게 혐오하고 미워했던 사람을 그토록 그리워하다니! 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남자를 그리워하는 김정수의 심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인간을 향한 혐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혐오는 정말 혐오가 아닐 수도 있다. 정말 본질적인 감정이 무엇인가에 의해 가려져, 혐오로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모든 혐오 속에 사랑이나 다른 감정이 존재한다는 말은 아니다. 겉과 속이 같은 혐오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어떠한 종류의 혐오는 사실 혐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