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닉러브가 생각나는 도입부
초반부에선 선생에 대한 주인공의 묘사가 불쾌했다. 남자들만의 정신적 사랑, 그리스 문화와 데미안 등이 생각났다. 동성애코드 때문이 아니라 특유의 \’정신적 교류는 남자들만 가능하다\’는 여성배제적 태도때문에 불쾌했다. 그것만큼 여성을 물화하는 태도도 없다. 얻어갈 것만 얻어가자는 마음으로, 불편한 마음을 달래가며 완독했다. 아마 모임이 없었다면 금방 덮었을 듯 하다. 만약 혼자 읽었으면 읽다가 그만뒀을 게 분명한데, 모임 덕에 끝까지 읽었다. 책이 불호여도 토론은 즐겁고, 얻어가는게 있어서 좋았다. 모임을 통해 이렇게 취향이 아닌 것도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좋다.
배부른 지식인
이 책은 선생에 대해서 계속 서술하고 있는데, 선생은 거의 모든 말에 \’자네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이래서 그러했네.\’라는 말을 한다. 변명하고 있다는 걸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배부른 지식인의 변명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지금에서야 든 생각인데, 어쩌면 그래서 제목 \’마음\’이 의미가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행복해야할 환경에서, 자기 마음에 갇혀 고행길을 걷는 모습을 보면 반면교사로써의 깨달음이 마음에 자리한다. 어쩌면 그런 비호감을 노린 걸지도? 라는 게 내 생각인데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은 저 선생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더라. 그냥 나에게 느껴진 의미는 그러했다.
솔직함
읽으면서 싫으면서도 좋았던 부분은 솔직한 감정묘사였다. 누구든 자신 하나만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갈텐데, 결국 자신도 남들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나만은 저 사람들처럼 살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 잠깐의 순간들을 우리는 평생 마음에 쌓아두고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말하지못하는 사소하지만 엄청난 비밀. 그걸 꺼낸 순간만큼은 이기적이라고 욕할지언정 용기가 없다고는 말하지 못 할 것 같다.
메이지 시대의 죽음
비슷한 나이대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선생과 아빠를 대조하고, 결국엔 둘 다 죽거나, 죽기 직전으로 막을 내린다. 전혀 다른 둘이지만, 메이지 천황이 죽고서 그것에 엄청난 상실감을 느낀다. 처음엔 보고 의아했는데, 마지막 선생의 유언에서 내가 느낀 바론 시대의 마지막 장을 그들의 죽음으로써 표현하는 것 같았다. 죽지 못 해 살았다는 장군의 인생과 선생이 같은 길을 가는 것도, 나름 인상이 깊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믿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날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생각하니 씁쓸했지. 이해시킬 방법은 있지만, 이해시킬 용기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 슬퍼졌네\’
나는 힘들단걸 다른사람에게 이야기했을때 어떻게 위로받아야할 지 모르겠다. 그래서 힘들면 아무한테도 말할 용기를 못냈었다. 언니라는 존재가 있어서 다행히 남한테 못할 말들을 서로 쏟아내지만, 그 용기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시킬 용기가 없다는 말이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