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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과 ‘익숙한 것’의 경계
저자/역자
김학선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20-03-02
독서시작일
2021년 09월 15일
독서종료일
2021년 09월 17일
서평작성자
김*지

Contents

서론 1890년대의 시간정치

『24시간 시대의 탄생』은 “1980년대 생활문화 속 자율과 통제의 ‘시간정치’”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야간통행금지제도, 국기하강식, 서머타임제, 법정기념일 등 1980년대 시행되었던 다양한 국가차원의 시간정치가 등장한다. 그것들이 시행되고 또는 폐지된 주된 배경인 1980년대는 “‘자율’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규율로 조직하고 국민의 24시간을 통치의 수간이자 대상으로” 삼은 시대였다. 또한 정치에 일상의 시간을 자원으로 동원하고, 시간을 통해 국민을 통합하고 사회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있던 시대였다.

이렇듯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980년대’라는 시대는 학교에서 한국사를 공부하고,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그 시대의 이야기를 보고 들어온 나에게 낯선 것만은 아니었다.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아님에도 익숙하게 느껴지곤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 정치’ 속에서 본 1980년대의 모습은 나와 조금은 낯설고,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아마 다르고 낯설었던 것은 역사이고 겹쳐보였던 것은 정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느꼈던 ‘낯선 것’과 ‘익숙한 것’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통금과 같은 ‘낯선 것’과 기념일과 같은 ‘익숙한 것’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해서 민방위 훈련, 애국가, 국기에 대한 맹세와 같은 것들은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의 경계’에 있다고 느꼈다.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한 ‘24시간

COVID-19로 한국엔 새로운 버전의 ‘통금시간’이 생겼다. 긴밀히 말하면 밖에 있는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므로 다르지만, 국가가 국민이 시간에 맞춰 행동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부분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 즉,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까지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개인은 주어진 24시간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을 적어도 국가가 강제적으로 통제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다 궁금해진 것은 ‘언제부터 개인의 시간이 24시간이 된 것일까?’에 대한 것이다. 또한 ‘왜 시대에 따라 개인이 가지는 시간이 달라질까’하는 것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책을 통해 쉽게 답할 수 있다. 한국 국민의 시간이 24시간이 된 것의 한 가지 시점은 야간통행금지제도의 철폐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를 통해 심야시간이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야간통행금지제도가 철폐된 이후 개인은 ‘24’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24시간이 되는 것으로부터 오는 일상생활의 변화 또한 마주했다. 모든 사람의 시간의 가치가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같은 24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24시간을 가지게 된 시점과 그 이후는 다르다. 그것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생활도, 생각도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시대에 따라 개인이 또는 국민이 가지게 되는 ‘시간’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절대적으로 한 가지만의 영향은 아니겠지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그 이유에 국가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는 물론 그 이전에도 개인의 시간이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국가 아래에서 국민의 시간은 국가의 것처럼 사용되었고 이는 1980년대의 시간을 통한 여러 정책들을 통해 볼 수 있는 1980년대와 지금의 ‘시간’에 대한 ‘다른’ 취급이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느낀 낯선 어떤 것은 바로 그 시간을 대하는 취급과 관련된 것이었다. 나의 24시간을 자율적으로 활용하고 쓸 수 있는 지금과 달리 지금과 다른 어떤 시대에는 24시간이 개인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쓰인 것이 바로 그러한 부분이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24시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야간통행금지제도로 심야시간을 없애기도 만들어주기도 하고, 서머타임제로 ‘낮 시간’을 길게 만들어버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차원의 문제로 시간으로서 국민의 행동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지금, 과거의 낯섦이 익숙한 모습으로 재현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았다. 분명히 다르고 낯선 시대이지만 완벽히 분리하여 볼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르지만 시간으로서 국민을 ‘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았기 때문이다.

국가를 사랑하는 국민을 만드는 것

국가가 국민에게 24시간을 부여한 것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함이라면, 국가는 왜 국민을 ‘통제’하거나 관리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된다. 먼저 1980년대에는 “극장에서의 애국가 상영, 국기에 대한 맹세, 국기하강식은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하는 것을 국가에 대한 충성과 등치시키고, 국가에 대한 충성이 현 정권에 대한 동의나 협력과 동일한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증명’하는 그와 동시에 일상적인 것으로 내재화 된 시간들은 획일화된 방식으로 국가 앞에 국민을 모았다. 이는 당시의 시대상 속에서 ‘자율’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듯 시간을 통해 한 개인을 국가의 국민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시간정치’는 낯선 과거의 것 즉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냐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을 국민에게 내재화 하려는 시도는 아무도 모르게 일상 속에 녹아있다. 중요한 행사의 차례의 시작에는 빠지지 않고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며 가슴에 손을 올리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러한 시간은 어느새 일상적인 것이 되어 깊게 고민해보지 않는 이상 그 시간에 대한 의문이나 불만 또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과연 그러한 시간들, 어쩌면 국가가 한 개인을 국민으로서 만들기 위한 시간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 괜찮은 일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그러한 국가를 사랑하는 국민, 국가를 위한 국민을 만들려는 국가의 시도에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과연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때론 그 강제성에 대해 거부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국가의 통제와 관리 아래 국민 그리고 개인은 무능하거나 무지하거나 무력한 존재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억의 공유와 감정의 공유

아무도 암기하라고 시키지도, 시험에 매번 정답으로 나오는 것도 아님에도 대부분의 국민이 외우고 있는 날짜들이 있다. 3월 1일, 6월 25일, 8월 15일 또는 삼일절, 한글날, 광복절 등과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러한 날짜 그리고 날들이다. 국가가 해당 날짜들을 선택해서 국가적인 기념일로 만들고 이에 더하여 공휴일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이는 앞서 말했던 국민, 민족 만들기의 연장선이 아닌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개인 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기념일이 존재한다. 이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던 한 날짜를 선택하고 그 시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 날짜는 서로 간의 시간과 기억 너 나아가 감정을 공유했던 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과 감정들은 그들만의 추억으로 존재한다. 국가가 만든 기념일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던 날을 선택해서 국민들로 하여금 그 날을 기억하게 만든다. 기억하게 하기 위해 공휴일로 만들고, 그 날 특별한 국가적인 행사를 진행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그 날은 국민들에게 특별한 날, 의미 있는 날, 그렇기에 기억하고 기념해야만 하는 날로 인식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의 시간정치 역시 낯선 방식의 정치는 아닐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기념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방식의 시간정치는 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간단히 생각하면 국가가 법정 기념일과 같은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 시간을 국민이 기억하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가는 국민이 기억하는 것과 그 방식 또한 관리하게 될 수 있다. 한 가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을 국가가 점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고 또한 기념하는 것은 개인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국민의 기억과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을 한 가지의 획일화된 방식으로 공유하도록 하는 시간정치를 하고 있을지라도 국가만이 한 국가의 ‘기억’을 점유하도록 두는 것은 바람직한 방식의 기억과 기념이 아닐 것이다.

통제하려는 자와 벗어나려는 자

『24시간 시대의 탄생』을 읽으며 과거의 역사는 익숙한 것이 아니라 ‘낯선 것’임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그 역사에서 보여 진 것들이 또 다른 방식으로 현재에 나타나 재현되면서 ‘익숙한 것’으로 느껴졌다. 개인이 온전히 24시간을 가지게 된 것 그리고 그 시간마저 국가의 것으로 관리되었던 것에 대한 낯섦이 있었지만, 국가가 시간을 통제하고 그 속에서 국민을 관리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또 국가에 대한 애국심에 대한 ‘증명’과도 같은 시간이 있어야 했던 것에 대한 낯섦과 동시에 지금도 발견할 수 있는 국가의 ‘국민 만들기’에 또한 익숙함을 발견했다.

국가가 시간을 이용해서 정치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을 주목하는가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본 것은 이러한 시간정치가 한국의 1980년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간정치, 이를 통한 그 나라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통제와 같은 정책들은 그 이전 시기에도 있었다. 미군정 시기, 일제강점기 그리고 그 이전에도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이외의 곳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하는 시간정치를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시간정치라는 것은 한국의 특수한 어떤 것이 아니라, ‘국민국가’라는 것을 위해 국가가 하는 하나의 정책으로 ‘시간’이 활용 또는 이용되는 것이다. 국가는 비슷하지만 또 다른 시간정치를 하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는 그 정책 아래에서 통제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을 그리고 한 국가를 구성하는 ‘민족’을 만들기 위한 통제와 관리 등의 시도에, 이전에도 그러했듯 개인은 무조건 통제되는 존재는 아니다. 불편함을 느끼고, 의문을 던진다. 이미 일상생활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것을 뒤집어 생각하고, 그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던지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러나 ‘국가에 소속된 개인’은 한 번쯤 시간에 대한 국가의 통제에 대해, 시간정치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만드는 집단 기억과 기념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는 시간에 대한 주권을 가진 존재이다.

그리고 『24시간 시대의 탄생』은 시간주권을 가진 21세기를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국가의 시간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1980년대의 시간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지만 그것만의 것은 아니다. 과연 지금의 국가는 그 시대의 시간정치와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그 안에서의 한 개인의 모습은 어떠한지, 과연 개인의 24시간이 정말 개인만의 것으로 존재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이 보여주는 1980년대는 1980년대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낯선 1980년대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또는 다시 재현되는 것 같은 익숙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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