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에 대한 인상, 평
SF라고 하면 엄청난 첨단도시에서 일어나는 불평등과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같은 디스토피아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의 서사가 나올 것만 같았는데 예상과 전혀 다른, 그래서 좋았던 책이다. SF에서 다룰만한 소재들을 좀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다뤄서 SF라는 장르로써의 의미보다도 문학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SF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도 계속 나를 그 상황에 떨어뜨려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이렇게 짧게 끝나기엔 조금 아쉽단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책모임을 하면서 회원들과 그 빈부분을 직접 상상하며 나눠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처음 단편의 상상하는 즐거움을 알게된 좋은 경험이었다.
마냥 행복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는 서평을 봤는데 이 책과 많이 맞닿아있는 것 같다. 그리 행복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살아있음에 의한 따뜻함이 있는 소설이다. 삶이 버겁고 무의미해보일때 읽으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2.단편별 생각나는 키워드 정리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유토피아와 현실, 행복과 사랑, 같음과 다름
왜 마을에선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나중에서야 자신이 매일을 함께한 자매들과 왜 사랑에 빠지지 않는지 궁금해하지조차 않았다는 걸 알게된다. 그게 어떤 걸 의미하는 걸까 궁금했다. 왜 꼭 지구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 자신과 너무도 다른 사람들을 보고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된걸까? 행복만이 존재하는 유토피아에선 결핍이 없어 사랑을 못 느끼는 걸까? 사랑을 못 느끼는 결핍을 가지게 되는 걸까? 어떤 감정을 느껴본 적조차 없으니 그게 곧 결핍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갈 앞으로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어서 디스토피아에 남는 건 어떤 마음일까?
스펙트럼: 루이와 희진의 관계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루이와 희진의 관계가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같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감상이기 때문에 그 순간이 아니었다면 나는 쭉 이런 연결고리를 알아채지 못했을 테다. 책모임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나날이다. 그래서 만약 이 이야기를 보고 온 사람이 있다면, 글로나마 내 즐거움을 나눠갔으면 한다! 반려동물이 인간에게, 희진이 루이에게 느꼈던 교감을 느낀다고 생각하면 새삼 그 관계가 애틋하고 신비롭다.
공생가설: 류드밀라와 그들, 인간의 이지의 근원, 영혼
돌고래는 지능이 높아서 복어를 조금씩 물면서 환각증상을 즐기는 마약파티도 하고, 지역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즐거움을 위해 사냥을 하기도 한다. 몇몇의 인간보다 지능이 높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이 단편을 읽으며 나는 \’그들\’이 우리가 인간으로써 존재하게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야기에서 \’그들\’은 외계인으로 나오는데, 이들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우리가 철학에 대해 토론하며, 인생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어떤 동물도 하지 않는 것, 그건 삶에 대해 고찰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왜 사는 지, 무얼 추구해야하는 지. 그것은 이미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후회, 미련, 외로움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간절히 찾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한 채였다. \’정말로 우리는 혼자인가? 이 넓은 우주에 정말 우리뿐인가?\’\”
스펙트럼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보며 나는, 우주에 로켓을 쏠 시간에 모기 멸종시키는 법을 연구하지 않는 비효율적인 사회가 조금 이해됐다. 우리는 정말 혼자인가? 계속 마음을 떠도는 문장이었다. 어쩌면 우린 그런 외로움에 우주로 향하는 걸까?란 생각을 하던 무렵이었다.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이 문장을 보고선 같은 책에서 이런 문장이 같이 나와도 되는 건가 싶었다. 나를 그렇게 설득시켜놓고, 우주에 흩어지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건 좀 너무하다. 이게 괘씸한 이유는 두 문장이 모두 계속 머리에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무엇인지 모를 외로움에 하늘을 보는 사람들과, 저멀리 흩어져 살아가는 이들이 가질 외로움. 결국에 인간은 외로울 운명인가보다.
이 편에서 가장 절정은 작가의 에필로그였다. 치매노인들의 버스정류장을 보고 떠올린 이야기. 글을 읽으며 가졌던 의문과 나이 많은 강아지를 보고 있는 듯한 애틋함이 거기서 나왔구나. 의식도 못하고 있던 의문이 풀렸을 때 왠지 감동을 느꼈다.
감정의 물성: 소유, 감정의 통제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우울을 계속 사들이는 걸보며 힘들때 슬픔에 취하기 위해 슬픈 걸 본 경험이 생각났다. 꽤나 보편적인 경험일텐데, 그런 감정을 정말 손으로 잡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편을 읽으면서 감정의 물성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을때, 내가 상상한 것은 디스토피아였다. 우울한 사람들은 우울 또는 행복을 살텐데, 어떤 것도 긍정적으로 상상하기가 어렵다. 억지로 행복을 가진다고 해서 사람이 행복해질까에 대한 회의감이 있다. 슬픈 일이 있는데, 그 감정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도 꽤나 불행한 것 같다. 그런데, 그래도 나는 만약 감정의 물성이 있다면 구매할 것 같다. 내가 그 감정을 소유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작가는 어떻게 물성의 매력을 알게 됐을까 궁금해진다.
관내분실: 어머니와 딸, 경력단절, 애증, 이해와 공감
\”빈정거리는 지민의 앞에서 엄마의 표정이 변했다. 엄마가 그렇게 상처받은 표정을 지을 때마다 지민은 통증 같은 슬픔을 느꼈다. 엄마는 언제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그럴 거면 우리에게 소리나 지르지 말지. 아빠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지 말지. 우리가 한 시간만 전화를 받지 않아도 비명을 지르는 대신 그냥 떨어져 살지. 멀쩡할 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가 돌아서는 순간 너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말하지나 말 것이지. 서로가 없는 존재인 것처럼, \”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두려웠을까. 그렇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 씨. 지민은 본 적 없는 그녀의 과거를 이제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를 용서하거나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기에는 늦었다.\”
읽으며 공감가는 문장이 많은 단편이었다. 그리고 사실 관내분실을 읽으며 마치 작가가 난 아이를 낳아보지 못했고,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 같은 불편을 느꼈다. 자격지심에 의한 생각인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해설을 읽지 않았다면 계속 이 글의 허점, 반대점으로 질문을 던졌을 것 같다. 해설에서는 \”그 과정에서 지민이 알게 되는 것은 단지 엄마가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임신으로 인해 일을 중단하면서 산후우울증을 겪기 시작했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인덱스가 지워지기 전에도 이미 엄마의 삶은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었다는 깨달음이다. … 지민이 용기 내어 건넨 이 말은, 불화를 겪었던 엄마에게 보내는 화해의 메시지를 넘어 세상과 단절된 여성들을 세상과 연결된 끈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거보고 내가 너무 내 결핍을 감싸려고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구나 생각했다. 작가의 의도를 사회구조적으로 잘 정리해서 보여주니까 읽으면서 좀 부끄러웠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약자성, 정상성, 혐오, 자유
심해를 헤엄치고 있을 재경을 상상하면 조금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약자성을 가졌단 이유로 얼떨결에 갖게 된 명예와 불명예를 벗어던지고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바다로 떠났을 사이보그 이모. 자신의 영웅이 바다에서 날아다닐 것을 상상하며 우주에서 헤엄칠 가윤. 그 둘은 어떻게 그렇게도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을까?
3. 마음에 와닿는 문장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간절히 찾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한 채였다. \’정말로 우리는 혼자인가? 이 넓은 우주에 정말 우리뿐인가?\’\”
\”그럼 루이 네게는,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선배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제 생각은 이래요.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빈정거리는 지민의 앞에서 엄마의 표정이 변했다. 엄마가 그렇게 상처받은 표정을 지을 때마다 지민은 통증 같은 슬픔을 느꼈다. 엄마는 언제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그럴 거면 우리에게 소리나 지르지 말지. 아빠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지 말지. 우리가 한 시간만 전화를 받지 않아도 비명을 지르는 대신 그냥 떨어져 살지. 멀쩡할 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가 돌아서는 순간 너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말하지나 말 것이지. 서로가 없는 존재인 것처럼, \”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두려웠을까. 그렇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 씨. 지민은 본 적 없는 그녀의 과거를 이제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를 용서하거나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기에는 늦었다.\”
\”데이지는 어쩌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진정한 유토피아란 신체적인 결함이 말끔하게 소거된 세상도, 그렇다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을 격리해놓은 세상도 아닐지 모른다고. 오히려 장애와 더불어 차별을, 사랑과 더불어 배제를, 완벽함과 더불어 고통을 함께 붙잡고 고민하는 세상일지 모른다고. 어쩌면 폐기해야 할 것은 소수자들의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할 것으로 규정하는 정상성 개념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