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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지 않아도 돼
저자/역자
김애란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19-09-25
독서시작일
2021년 03월 29일
독서종료일
2021년 03월 29일
서평작성자
문*정

Contents

책의 주인공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물려받아 굉장히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도망가 버린 아버지 때문에 주인공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여자가 몹시 차별받던 그 시대에 어머니는 모욕과 희롱들을 참아가며 택시 운전을 해서 돈을 벌어 홀로 주인공을 키우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과 딸을 동정 하지도, 가엽게 생각하여 주눅이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성적인 농담과 장난, 솔직함으로 딸을 대했다. 그 덕에 주인공은 아버지의 부재에 슬퍼하지도, 본인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당연하게도, ‘아버지’라는 단어는 금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아버지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묻기도 하고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연애시절을 들려주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항상 어머니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었는데, 딱 한 번 어머니 때문에 뛰었던 이야기를 듣고는 주인공은 줄곧 달리기를 하는 아버지를 상상해왔다.

분홍색 야광 반바지 차림에 수북한 다리털이 차지한 여윈 다리를 상상하며. 가끔은 바람이 잘 통하는 셔츠를 입혀 드리기도, 말랑한 운동화를 신겨드리기도 하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을 상상 속에서 그려보는 것도, 남들과는 다른 아버지가 없는 자신을 불쌍하다 생각해 위축되지 않는 것도 유별나고 특이해서 주인공의 삶의 이야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여느 날과 같이 아버지가 없어도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던 주인공은 집에 돌아왔을 때 미국에서 날아온 편지를 받는다. 영어를 모르는 어머니를 대신해 주인공이 편지를 펼쳐 보았다. 그 편지에 나온 내용은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도, 목소리조차 듣지도 못한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버지는 비참하고 어이없게도 죽었는데, 어머니께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만 온전히 전하고 편지의 내용을 거짓으로 꾸며 전한다.

편지를 받은 그날 밤 주인공은 길고 시끄러운 침묵 속에서 문득 자신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하늘 아래서 뛰고 있는 상상속의 아버지에게 달리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춰 드렸어도, 눈을 보호해주는 선글라스만은 씌워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의 얼굴에 선글라스를 씌워드리며 책은 끝이 난다.

나는 처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인 아버지의 행동들을 비판하지 않는 것도, 미국에서의 본인이 저지른 일들에 대한 마땅한 결과로 아버지가 겪었을 처지와 상황들을 동정하는 것도, 본인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전부인 어머니를 무참히 버린 아버지가 달리고 있는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정당화하고 스스로 위안을 얻는 것도 전부 나로서는 공감이 되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쯤에서 “그런데 갑자기, ‘나는 결국 용서할 수 없어 상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는 문장을 통해 깨달았다. 사실은 주인공 본인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많이, 아주 많이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다고. 그렇지만 미워하고 싶지 않았고 그 감정들을 인지하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가 우릴 버리고 간 게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기 위해 숨기고 숨겨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도망친 아버지를 원망하는 동시에 자신의 아버지이기에, 단지 아버지란 이유로 그의 잘못된 행동들을 정당화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주인공의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갈증이 느껴졌다.

분노와 원망, 그리고 동시에 그리움과 사무침.

그 종합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주인공은 아버지가 없어도 특별히 나쁠 것도 없다고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속이지만, 사실 아주 사무치게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러 했던 건 주인공뿐만 아니라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 그 둘이 부고를 안고 날아온 사람을 어떤 심정으로 맞이하였을까?

그 마음을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한 번 그들을 품에 꼬옥 껴안아 주고 싶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더는 스스로의 감정으로부터 도망치지 말라고. 자신의 발이 찢기어져 가는 것도 모른 채 달리는 것을 멈추어도 된다고. 멈춰 서서 똑바로 마주해 보라고. 사무치는 그리움도, 자신을 날카롭게 찌르는 원망도 이제는 서서히 아스러지며 무디어져 갈 거라고.

그리고 그 남자는 이제 눈부신 태양 아래 딸이 씌워준 선글라스를 쓰고 가볍게 멀리, 아주 멀리 달려 나가고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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