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고…
–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의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하다
도서관에서 책들을 살펴보던 도중, 심오한 뜻을 담고 있는 듯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책 표지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의 표지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하는 생각, 그리고 “그래도 날 사랑해 줄 건가요?”라는 문구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하는 궁금증과 함께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먼저, 책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배우인 잘생긴 아버지가 유명해지자 못생긴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다. 그렇게 버림받은 어머니의 아들인 남자 주인공 ‘그’와, 빼어난 미모로 재력가의 첩 노릇을 하다가 버림받은 어머니의 아들 ‘요한’과, 태어날 때부터 못생긴 얼굴로 태어나 고통 받으며 살아온 ‘그녀’는 백화점 지하 4층 주차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끝내 ‘그’는 ‘그녀’의 외적인 면모가 아닌, ‘그녀 자체’를 사랑해주고,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준다. 즉, 태생적인, 못생긴 외모 때문에 평생을 상처받고, 여자로서의 꿈이나 희망을 모두 뒤로한 채 살아오던 그녀는 결국 자신도 사랑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책을 읽어나가며 전체적인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그 중 와 닿았던 구절이 두 개가 있다.
첫째는 “외모는 돈보다 더 절대적이야. 인간에게, 또 인간이 만든 이 보잘것없는 세계에서 말이야,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성형 강국’으로 불리고 있는 한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잘생긴 외모’가 ‘타고난 스펙’이 되는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취직을 할 때에도 잘생긴 외모를 갖추기 위해 성형수술까지 감행한다. 뉴스에서 자주 보고 자주 들어왔던 이야기인지라 항상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지만, 이 구절을 읽으며 보이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느껴졌고, 나는 외면을 갖추어 나가기보다, 내면을 잘 갖추어 누구보다 당당한, ‘진정한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만약 그녀였다면 외모를 갖추려 노력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부터 하게 되는 나의 모습, 그리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추기도 전에, 외면의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 겉모습만을 꾸미려했던 나의 이전 모습들을 반성해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작가의 끝맺음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작가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남을 부러워하기보다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나가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었다. 나도 길거리를 다니며 옆에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지나갈 때, TV에서 출중한 외모를 갖춘 연예인들이 나올 때, 그리고 SNS에서 유명한 스타들의 얼굴을 보며 그들의 삶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이렇게 살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고, ‘나도 한번쯤은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었다. 작가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갖추고,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여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과연 작가가 궁극적으로 시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의 사회는 비단 외모뿐만이 아닌 부와 권력을 통해 힘을 가지려 해왔다. 그런 힘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혜택을 받고 살아오고 있고, 나머지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부끄러워하고 그런 극소수의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런 사회 속의 한 사람이었던 그녀를 변화 시킨 것은 그녀를 무시하는 사회의 시선들을 없애거나 그녀의 외모를 예쁘게 바꾼다거나 하는 거대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의 진심어린 ‘사랑’을 통해 그녀는 변화할 수 있었고, 작가는 이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시선들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치유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진정한 사랑’을 통한 ‘외모지상주의 세태’의 극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우리는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그러한 잘못된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와 같은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사랑이 결여된 오늘날의 사회에 ‘진정한 사랑’이 필요하다.’인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앞서 궁금증을 가졌던 표지의 그림과 문구가 의미하는 것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표지는 결국 이 책의 내용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책 표지를 보는 순간, 시녀들 중 금발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귀여운 아이가 먼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조명은 누구에게나 예쁨 받을 작고 귀여운 아이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못생기고 키가 작은 여자에게 가 있다. 곧 작가가 비판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래도 날 사랑해 줄 건가요?”라는 문구는 ‘못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랑’이 존재한다면,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답변에 귀결될 수 있었다.
이러한 큰 깨달음을 준책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녀와 그가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줄 알았는데, 그가 이미 죽은 상태라는 반전에 크게 놀랐고, 내가 예상한 결말과 달랐다는 점이다. 하지만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대해 이전보다 깊게 고찰할 수 있게 하고, ‘나만의 가치를 발견하여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게 해 준 작가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