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개봉한 영화,<동주>(이준익,2015)를 아주 감명깊게 본 기억이 있다. 그 영화에는 내가 정말 많이 애정하는 것들이 한가득 모여있다. 나는 시인 윤동주와 그의 시, 흑백화면 속 배우들의 연기를 좋아한다. 한껏 기대를 하고 보았던 영화는 기대 이상의 감동을 안겨주었고, 동시에 잔잔한 흑백화면 너머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재발견을 전해 주었다. 이 영화를 본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윤동주의 유일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윤동주라는 시인에 대한 기록들과 일화들로 윤동주라는 사람을 떠올려 보았을 땐, 그를 그저 조선을 사랑했던 ‘감수성이 풍부한 젊은 시인’ 정도로 아름답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 <동주>를 통해 나는 시인 윤동주가 아닌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청년 동주’를 새롭게 마주할 수 있었다. 절친한 친구인 송몽규를 바라보며 동주는 마음속에 물러터진 질투와 열등감을 가진다. 아름다운 시를 써 내려가는 동안 그의 표정과 마음은 아름답지 못하고 슬프다. 감히 평화 속에 살아가는 지금의 청년인 내가,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그들의 시대적 불안과 슬픔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동주가 몽규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들은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내게는 몽규처럼 앞으로 나설 용기가 없을까?’, ‘왜 나는 시인이 되고 싶은 걸까?’, ‘왜 너는 나에게 계속 시를 쓰라고 하는 거니.’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친애하지만 착찹한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친우에게 끝없는 물음을 던지는 동주의 모습은 어느 시대의 어떤 청년에게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가까운 친구의 장점은 나의 장점을 단점으로 보이게 하고 나를 스스로 작게 느끼게 만든다. 이런 윤동주의 번뇌는 그가 쓴 시들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 자화상, 윤동주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특히 이 시를 읽는 동안, 하얀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단정하게 책 속의 시에서 그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책을 읽는 내내, 청년 윤동주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었다.
당신은 뜨거운 눈물로 조선을 사랑했고 몽규는 뜨거운 목소리로 조선을 사랑했을 뿐, 당신들은 모두 아름답게 빛나는 청춘이었다고.미완의 청춘으로 남았지만 그래서 더 뜨겁고 아름다운 당신들이었다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했던 당신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세상 속에 평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