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어차피 아이를 가지면서 일을 잠시 그만두는 건, 언제나 있어온 일이었으니까.”[1] 이는 「관내분실」의 대사 중 하나인데, 이렇듯 우리 사회는 여성이 아기를 가지면 휴직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직장 내에서도 여성이 임신을 하면 퇴사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만약 육아휴직 후 다시 직장으로 복귀한다고 해도 경력단절로 인해 예전과 같은 직장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실 아이를 가진다는 것,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남녀 공동 부담인데 육아휴직을 하는 것은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여성의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이러한 사회의 불합리한 인식에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출산 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영위하지 못한다고 한다. 출산 이전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한 아이의 ‘엄마’로써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의 엄마 역시 우리를 위해(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계시는데, 우리에게는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시려고 노력하시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을 챙기지 않으신다. 또한 나 역시 엄마의 젊은 시절을, 나를 낳기 전의 엄마의 모습을 생각해 본 기억이 없다. 분명 엄마도 나처럼 찬란했던 젊은 시절을 가지고 있을 텐데 나는 엄마를 단지 ‘나의 엄마’로만 생각해왔던 것 같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여성이 출산–육아를 통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계속해서 이러한 주제를 계속해서 소설 속에 제시한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4차 산업혁명인데, 이 소설은 SF 소설로 현재 우리에게 가장 이슈화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혹은 그 이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수많은 데이터가 연결되어 있는 IT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 기술이 점점 발달함에 따라 전자책이 보편화되었고 우리는 강의를 들을 때에도 연필이 아닌 태블릿을 사용하여 필기를 하곤 한다. 이에 따라 「관내분실」에서 도서관은 책을 읽기 위한 공간이 아닌 추모의 공간으로 바뀌었고 책과 논문, 자료들은 전산화된 것으로 묘사되었다.[2] 작가는 SF 적 장치들을 소설 속에 묘사함으로써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직면한 우리 세대에게 변화된 미래의 모습을 생각해 보도록 의도한 것 같다. 따라서 오늘 나는 이러한 특성들을 중심으로 이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2. 본론
이 소설은 엄마가 된 주인공이 실종된 자신의 엄마의 마인드를 찾는 과정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로 자란 주인공이 아이를 갖게 되면서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죽은 엄마의 마인드를 통해 알아보려 한다. 하지만 이미 엄마의 마인드는 분실되어 있었고 이를 찾기 위해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그 시절의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3]
이 소설에서 미혼인 팀장이 주인공이 출산과 육아 휴가를 가질 것을 염두에 두고 이제 새로운 일을 맡기지 않고 엄마가 아이를 직접 키우는 게 좋다고 충고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4]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여성에게 출산을, 육아를 강요한다. 출산을 한 여성은 가정에 집중할 것을 강요당하며, 인간 OOO가 아닌 누구의 엄마로써 이름 불리고 규정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여성은 점차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상실해가며 출산 이전의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출산과 양육은 남녀 공동 부담인 반면 이러한 부차적인 피해는 오로지 여성 혼자만이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지민의 안부 대신 배 속 아기의 안부를 물어 왔다.”[5]라는 장면에서 임신 이후 주인공이 내가 나로써 존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모성애’라는 말로 여성들을 가정에 충실하도록 조종하면서 점차 사회에서, 세상에서 멀어지도록 한다. 여성은 점차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며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을 규정하는 장소와 이름이 오직 가정으로 한정되게 된다. 주인공이 엄마의 유품 책 4권을 살펴보면서 만약 엄마가 아이라는 족쇄에 걸리지 않고 자신의 진짜 삶을 살았더라면, 끝까지 자신의 직업을 붙잡고 있었다면 조울증이 재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장면[6]에서 이를 구체화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주인공의 엄마 김은하 씨의 인덱스가 삭제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인덱스’란 고유 인식 코드로 개개인의 고유하고 개별적인 자아정체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인덱스의 삭제는 김은하 씨가 출산 후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 과정, 죽은 후마저 한 번 더 세상에서 분리되게 되는 자아상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엄마가 죽은 계절이 겨울이었을 때 자신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남반구에 있었다는 부분[7]에서 주인공과 엄마 김은하 씨의 생각의 차이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어렸던 시절 자아 상실로 인한 엄마의 산후 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신적 학대로만 생각했지만 사실 독자의 눈에는 오히려 김은하 씨가 자신에게 남은 단 하나의 정체성인 ‘엄마’라는 이름에 집착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포기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남은 나머지(가정, ‘엄마’, 아이들)에 집착했던 것이 아닐까. 또한 가족들은 이러한 집착의 근본적 원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산후우울증’이란 색안경을 끼고 김은하 씨를 바라본 것이 아닐까.
이와 더불어 우리는 이 소설에서 여러 가지 SF 적 장치들을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 입덧 안정제, 태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안전한 약, 통증이 거의 없는 분만법, 피임칩[8]등과 같은 임신–출산에 관련된 장치들이 있다. 이와 더불어 저렴한 육아보조서비스, 출산 후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는다는 부분[9]역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소설의 작가가 젊은 여성 작가임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요소는 충분히 현재 여성에게 불합리하게 작용하는 부분이 해소되길 바라는 작가의 의식이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도서관의 의미 변화, 마인드 업로딩의 보편화[10]라는 장치가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종이책의 대부분이 전산화되면서 도서관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으로 묘사한다. 이는 지금 우리 현실과 매우 근접하게 느껴지는데, 스마트폰과 같은 IT가 발달하면서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신하게 된 현재 우리의 삶을, 종이책이 소멸하게 될 차후의 우리 미래 세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생소한 장치를 등장시켜 도서관이 책을 진열하는 공간이 아닌 추모의 공간으로 변모함을 인지시킨다. 데이터 조각들로 도서관에 보관된 마인드들은 남겨진 사람들이 고인이 진짜로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여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상실감을 상쇄시키는 기능을 한다.
과거의 우리, 현재의 우리 역시 모두 ‘헤어짐’을 두려워했으며, 아마 미래의 우리 역시 여전히 이를 두려워할 것인데, 사실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 인간이 이러한 이별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대부분은 어릴 적엔 친구의 전학 소식에 서운함에 눈물을 흘린 혹은 어른이 되어서는 주변인의 부고 소식을 듣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헤어짐을 마주함에도 이를 여전히 두려워하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가끔 헤어진 이들을 떠올려 ‘이들이 지금 내 옆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생각하곤 한다. 과연 우리 인간에게 ‘헤어짐’이란 무엇일까? 이러한 대답은 ‘마인드’라는 장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인드는 고인이 죽은 현재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만약 고인이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물음을 해결해 주곤 한다. 고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왔던 시간들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심리적 갈망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3. 결론
이렇듯 이 소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출산 여성의 인권과 삶의 질의 하락, 이로 인한 자아상실에 대해서 끊임없이 시사점을 던진다. 실제로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출산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도 저출산과 같은 사회문제를 젊은 여성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출산 여성이 가진 이러한 문제들을 근본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출산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정부는 육아 휴직 제도를 남녀 구분 없이 적용하도록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실제 직장 내에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아니꼽게(별나게) 보기도 한다. 이는 출산과 육아가 남녀 공동 부담인 반면, 육아 휴직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 머릿속에 뿌리 깊이 내려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머릿속에 박힌 아이는 여자가 키워야 한다는 인식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가적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의 노력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출산 여성이 출산, 육아로 인하여 자신의 삶의 잃어버리지 않도록, 스스로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 출산 여성을 OO의 엄마로써가 아닌, 오로지 인간 OOO으로써 이들을 대해야 한다. 나 역시 이전까지 엄마를 ‘나의 엄마’로써만 대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엄마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엄마가 ‘나의 엄마’로써 살아온 시간보다 사회에서 인간 OOO으로써, 엄마 본래의 모습 그 자체로써 살아온 시간이 더 긴데 어째서 나는 엄마를 단지 ‘나의 엄마’로써만 대했던 걸까. 엄마에게도 나처럼 친구가 있을 것이고 엄마 역시 친구와 수다 떨면서 노는 것이 재밌을 것이고 엄마에게도 행복했던 학창 시절이, 젊은 시절이 있을 텐데 나를 가지게 되면서 엄마가 포기한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죄송하다. 우리 모두 자신의 엄마, 혹은 주변의 출산 여성들이 이들의 아름다웠던 본래의 삶을, 본래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눈부셨던 자신의 젊은 날들을 그리워하지 않도록 이들을 ‘가정’이 아닌 또 다른 사회 울타리로 규정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을 마주한 우리 세대는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대비하고 적응해 나가야 한다. 또한 출산 여성의 자아 상실이 현재 우리 세대의 사회 문제로 떠오른 만큼 미래에는 AI로 인한 우리 인간의 자아 상실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과학 기술의 점진적 발전에 의해서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는 변화하는 AI 시대에서 우리의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달콤한 인공지능의 편리함에 무작정 스며들지 않고 어느 정도 경계를 함으로써 우리 인간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4. 참고자료
김초엽, 「관내분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네이버 검색 김초엽 작가 프로필
[1]김초엽, 「관내분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53쪽 참조.
[2]김초엽, 「관내분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11쪽 참조.
[3]김초엽, 「관내분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4]김초엽, 「관내분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35쪽 참조.
[5]김초엽, 「관내분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16쪽 참조.
[6]김초엽, 「관내분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7]김초엽, 「관내분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40쪽 참조.
[8]김초엽, 「관내분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16쪽 참조.
[9]김초엽, 「관내분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16쪽 참조.
[10]김초엽, 「관내분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11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