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익히 잘 알려진 고전 명작 중 하나이다. 실제로 이 책은 1945년에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인쇄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
동물 농장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부터 스탈린 시대까지의 소련의 상황을 우화의 모습을 빌려 표현하고 있다. 지식층인 돼지가 농장 동물들을 선동하여 기존의 권력자였던 인간을 쫓아내는 것을 시작으로, 돼지 간의 권력 다툼과 신정권의 부패 과정이 깔끔하게 드러나 있다. 120p 정도의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과 담백하고 간결한 필체가 특징으로, 독서를 오래 놓은 나도 쉽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 한국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북한일 것이다. 남한에서의 북한의 이미지는 비참하다. 20세기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고, 지금에 이르러선 실패한 사상으로 평가받는 이 둘은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묘한 거부감을 안겨준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결말은 독재정권과 지독한 굶주림뿐이니, 자본주의 세상은 경쟁이 치열할지라도 저들보단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곁에 사회주의 국가를 끼고 살면서 정작 이들 사상이 어떠한지는 잘 알지 못한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헷갈리기도 하고, 북한의 국명이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하였을 때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 아니야? 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막상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깊게 파고들려고 하면 골이 아프다. 그 사상은 방대할뿐더러 사상이 등장한 배경,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바탕이 깔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 농장은 우화를 통해 당대의 사회주의를 풍자하였다. 우화 형식을 빌렸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책의 내용이 소련의 실제 사건을 모델로 만들어졌음을 전혀 몰라도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과 부패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렵고 친숙하지 않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처음 마주하기에 좋은 도서다.
책의 저자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는 책 전체의 분위기, 그리고 내용을 보며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해야할 점은 오웰이 비판하는 대상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 자체가 아니라, 타락하는 권력층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점이다. 혁명으로 체제가 바뀌어도 권력을 지닌 독재자가 있는 한 국민의 고통은 지속될 것이라는 게 오웰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오웰은 지도층의 타락을 막기 위해, 그들의 부정을 저지하기 위해선 국민이 깨어나야 함을 작품 내내 암시하고 있다. 꿈처럼 이상적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국민의 지식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오웰의 통찰이 엿보인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돼지들의 부정에 대응하지 못하고 이용당하는 동물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만약 그들이 처음 규정이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면, 간사한 바람잡이에 휘둘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정말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세상,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물들의 처지를 가엾어 하는 동시에, 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시대에서 정치에 관심이 없는 나 자신을 성찰하게 되었다. 알파벳을 모르는 동물과, 정책은 커녕 그들이 속한 정당조차 제대로 모르는 나.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벌써 반세기가 훌쩍 넘었음에도 동물농장은 여전히 교훈과 지식을 전달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어리석은 동물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면, 꼭 한 번 짬을 내어 읽어볼 가치가 있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