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과거>는 학교 도서관 행사로 우연히 접할 수 있었다. 하루종일 책만 붙잡고 그 내용에 대해 토론하며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책을 읽으며 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았다. 빛의 과거. 즉 제목에 담겨있는 의미가 무엇일까? 은희경 작가님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바를 함축하여 표현한 빛의 과거에서 빛은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보았다.
소설 중간중간에 빛에 대한 서술은 계속해서 나온다. 279페이지에 인생을 시소에 비유하면서 ‘아침에 볕이 들었던 자리가 저녁이 되면 싸늘해지듯 빛은 자리를 옮겨 다니느데 어둠은 규칙 없이 찾아온다.’, 281페이지 ‘과거의 빛은 내게 한때의 그림자를 드리운 뒤 사라졌다.’, 소설을 마무리하는 구절인 ‘기울고 스러져갈 청춘이 한 순간 머물렀던 날카로운 환한 빛으로 나는 그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등 많은 구절을 가지고 빛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결론적으로는 빛의 의미에 대해 크게 3가지로 해석을 할 수 있었다.
첫번째. 빛은 창에서 바라보는 별빛이라 해석할 수 있다. 별의 반짝임은 수백 수억 광년 전에 시작된 빛이다. 즉 과거에 존재하던 빛을 이제서야 우리는 확인하는 것이다. 김유경이 1977년을 40년이 지난 2017년에야 회상을 하는 것,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과거에 존재하는 빛을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였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빛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두번째. 이때부터는 빛의 특성을 생각해보았다. 굴절과 반사. 과거로의 회상은 온전한 과거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과거를 조작하여 이기적인 형태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보는 과거는 책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타인과 비교하면 같은 시간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보게 된다. 그렇기에 빛의 과거는 그 상태로 오로지 보지 못한다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 해석은 ‘다름 속에서 어떻게 섞이는 것이 맞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 후 문득 든 생각으로부터 나왔다. 빛은 다양한 색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속에서 나는 화합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다름 속에서 섞임 거기서 틀림이라 생각하며 서로를 비방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다른 사람을 단정지어 고정관념 속에 박는 것이 아니라 빛처럼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 그래서 빛을 현재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목표로도 해석할 수 있을 거 같다.
이 책은 일반적인 소설과 차이가 있어서 읽는 사람마다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갈등 속에서의 성장과 화해를 다루는 게 아닌 현실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과 자조로 이루어져있고 역사적인 큰 사건을 다루기보다 일상생활에서의 균열이 어떻게 개인에게 나타나는 지 잘 다루고 있다. 이런 소설 속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어떤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표면에 들어난 내용으로 다름과 섞임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소설 속에 깔려있는 여성들에게 강요된, 아니,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강요된 그 시대에 맞는 관념들에 주목하여 자유와 평등을 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느낀 빛의 과거는 그 무엇도 아닌 쓸쓸한 웃음인 것 같다. 다름과 틀림을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교차하지 못하는 김유경과 김희진의 관점에, 누구보다 남에게 헌신하며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최성옥의 상황에, 신뢰하던 친구를 잃고 삶에 대한 신뢰도 잃은 송선미의 모습에. 소설은 대부분의 청춘을 다룬 소설과 다르게 해피엔딩이 아니다. 성공하지도 실패하지도 못한 삶 속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한 여자의 모습을 담담하게 풀어낼 뿐. 어쩌면 그렇기에 더 많은 생각을 남기고 더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것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