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글을 쓰기에 앞서 미리 알린다. 글을 읽어 내려가며 독자는 필자의 무식의 커다란 구멍을 발견할 것이다. 답답함과 무식함에 몸부림칠 독자에게 심심한 위로를 남긴다. 또한, 이 구멍들을 채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니 무식에 대해 지적해주는 것도 언제든 환영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은 필자에게 그다지 유쾌하게 읽힌 책은 아니었다. 하나는 서사 전개방식, 문장 전개 방식이 다소 구시대적 이었다는 것, 필자의 철학적 깊이가 세숫대야에 담겨있는 바닥 정도의 물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 다른 이유였다. (많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또한, 술, 여자, 즉 주색만 밝히고 주변사람에게 아무말이나 서슴치 않는 20세기의 조르바라는 인물이 21세기의 필자에게는 흔히 “개저씨”로 인식되어 인물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기도 하다. 물론, 다른 시대상의 인물을 현재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다소 오류가 있지만, 이해하더라도 어떠한 사유로 인물에 대해 거부감이 드는 것은 침범할 수 없는 읽는이의 “자유”의 영역임을 밝힌다.
자유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자유에 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자. 인간이 인간다워 지기 위해 자유로워야 된다고 말하는 조르바. 그럼 그가 말하는 자유는 뭔가? 내면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따르는 것, 즉 가령 술이 마시고 싶을때 진탕 마시는 것, 가식적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것, 예술적 감성이 폭발할때면 산투리를 연주해야하고, 여자를 안고 싶을 때면 여자를 안아야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보았다. 이 것을 정리하고 필자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런 자유에 다가가는 것이 과연 인간다워지는것인가? 혹은 동물처럼 본능에 충실해 지는 것인가? 물론 글 속의 화자처럼 모든 욕망을 절제하는 수도승같은 삶을 사는것이 인간다워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욕구 해결 역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의 세계관에서는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이기 때문이다. 허나 조르바가 말한 본능적 자유에 가까워질때 과연 인간은 동물 중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인가 혹은 그저 다른 동물과는 다른 특별함을 가지지 않는 똑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인가는 질문해볼 필요가 있는 의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