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s

>>
Book Reviews
>
[한국이 싫어서] _ 오늘의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
저자/역자
장강명,
출판사명
민음사 2015
출판년도
2015
독서시작일
2016년 06월 22일
독서종료일
2016년 06월 22일
서평작성자
**

Contents

#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 베스트 셀러 목록을 자주 보는 편이다. 어떤 책들이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지, 어떤 신작이 나왔는지 궁금해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 습관처럼 – 별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던 어느 날, '한국이 싫어서'를 발견했다. 제목이 자극적이어서 그런지 단번에 눈에 뛰더라. 호기심이 생겨서는, 꼬-옥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고.

 

#

새 책을 좋아해서 내가 빌리려던, 찾던 책이 이미 내 손아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작도서 쪽을 항상 기웃거린다. 뭐 끌리는 책 없나. 뭐 좀 재미있게 생긴 책 없나 하고. 시간이 흘러 – 그 때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하던 그 순간의 다짐이 희미해져 갈 때 쯤 – 칸막이 귀퉁이에 얌전히 놓여있는 것 치고는 너무나 노골적인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래, 이 책. 꼭 읽어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미 내 품안엔 세 권의 책들이 비좁게 안겨있었지만 별 수 있나. 다짐까지 했는데 빌려야지. 과다흡입 일보직전이지만 이 책의 첫 장을 제일 먼저 넘겨보고 싶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난 최초의 독자가 아니었더라.

 

 

#

책을 읽는 내내 책날개를 세 번쯤 확인했던 것 같다. 작가가 남자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내가 눈이 작아서, 혹여나 작가의 목덜미 뒤에 있던 머리를 못 본 건 아닌가 싶어서. 문체가 여성스럽거나, 섬세해서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다.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남자작가는 숱하게 많았지만 이 책은 뭐랄까. 주인공이 남자 혹은 여자가 아니라  완벽한 계나(주인공 이름)인데, 계나는 여자니까. 그래서 작가도 여자가 아닐까 싶어서 책날개의 작가 사진을 보고 또 본 것이다. 계나라는 어떤 새로운 고유명사가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김계나씨가 쓴 '계나의 한국이 싫어서 떠난 이야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재불거리기를 좋아하는 계나 언니가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가 오랜만에 날 만나서는 그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우후죽순 늘어놓는 것만 같았다.나중에는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 조차 망각할 뻔 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없이 맞장구치며 호응하기엔 뼈가 있다. 마이웨이로 살아가는 이 언니는 틱틱대면서도 정글의 맛도 본 적 없는 내가 지레 겁먹을까 싶어서, 이 나라의 단상을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듯한 느낌. 아픔을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조차 없는 세월호 사건 부터 여자들이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고한 여성을 잔인하게 살인했던 묻지마 살인 사건, 수 백명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은폐하려 했던 옥시크린 사건까지. 자국민이 자국에서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이 뭐 같은 나라를.  이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시민, 계나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한다.

 

–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도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p11)

 

–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p44)

 

 

#

 가까이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문득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올랐다.'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내가 사는 이 곳이 정말 그러할까.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어서도 아니고 적당한 영악함과 눈치로 무장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최적화된 사람도 아니지만, 사실 아직 저 말들이 와닿지는 않는다. 어쩌면 사람한테 치이거나 데이거나. 돈 때문에 처절함을 느껴보거나, 정당한 사유도 없이 나를 무시해버리는 누군가에 대한 서러움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이런 걱정도 섣불리 해보았다. 우리가 메이고 매달리는 것들. 취업이나 공부나 사랑이나. 우리가 힘듦을 감내하면서 까지 지고지순하게 노력하는 건 궁극적으로 행복하기 위해서인데, 만약 내가 바라던 것들을 이뤄냈는데도 허무함만 가득 할 뿐 하나도 행복하지 않으면 어쩌지. 정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계나도 말한다. 자신은 우리나라 행복 지수 순위가 몇 위고 하는 문제에는 관심없고, 단지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어서는 끝내는 잡히고야 마는 그런 톰슨 가젤일지라도, 사자가 오는 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으니 도망은 쳐봐야 하고. 그런 가젤도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는 있지 않냐고. 

 

 

#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즈음엔 다소 쌩뚱맞을 지도 모르나 어찌되었든 행복하자 싶었다. “나는 내 행복이 최우선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이기적으로 느껴졌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는 달라졌다. 내가 행하는 모든 사유와 행위의 근원이 행복이어야 함을 잊고 살지 말자고 다짐했으며, 오늘 하루에 있었던 수 많은 선택들 조차도 나의 행복을 우선으로 한 것들이어야 했다. 그런 선택의 익숙함이 – 아직 제대로 맛 보지 못한 – 이 세상을 버텨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Full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