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를 들어본 적이 있으세요?”
아침일찍하는 영어회화수업이 시작하기 전, 캐나다에서 오신 원어민 교수님에게 여쭤본 말이었다. 도서관에서 하는 행사에 참가하려는데, 무슨 책을 소개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나온 질문이었다. 큰 윤곽만 안다. 교수님의 대답이었다.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를 알고 계시나요?”
위안부, 짤막한 단어가 나왔다. 아마 한국에서 2년 간 머물며 어디선가 들은 말이 아닐는지.
“서양인이 일제를 얼마나 알고 있나요?”
이 질문에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일제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서양인은 적어도 4년제 대학을 졸업하거나, 역사, 시사에 관심이 많아 잡지와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일 것이다. 즉, 서양인 대부분 일제를 제대로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교수님이 주신 대답의 요지였다.
“홀로코스트는 얼마나 아나요.”
독일에서는 한 학기 내내 나치만 배우고, 유럽과 미국의 학교에서도 많이 가르친다고 했다. 원어민 교수님과 나눈 문답은 씁쓸하게 끝났다.
“홀로코스트가 뭔지 아냐.”
원어민 교수님과 질답이 있던 날,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 그게 뭔데?”
놀라웠다. 친구 4명에게 물어봤고, 개중 반이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몰랐다. 유대인 학살이라고 하자, 그제서 안다고 했다. 유대인 학살이라 하면 알고, 홀로코스트라면 모른다니, 이게 무슨 말장난인지. 나중에 그 친구가 자기 친구 10명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과반수가 모른다고 했다. 유대인 학살이라 하면, 안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왜곡하거나, 무지한 언행을 보면 역정을 낸다. 위안부를 창녀라 하는 말을 듣고 화내는 것이 그 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외국인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주길 바란다. 일제가 무슨 잘못을 했으며, 지금 일본이 그것을 덮기 위해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남의 아픈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던가? 근현대사, 아니, 인류사에 있어 가장 큰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 홀로코스트조차 모른다면, 우리가 외국인에게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아주길 바랄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이것이 라울 힐베르크의 역작,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를 소개하는 이유다. 이 책으로 말하자면, 1961년이라는 이른 연도에 나왔지만, 홀로코스트에 있어서 불후의 저작이라 불릴 정도다. 그만큼 홀로코스트라는 대사건을 서술하는 그 분량은 어마어마하다. 이 책의 분량은 너무 커서 2권으로 분할되어 출판되었고, 그 책을 모두 합치면 약 1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나온다. 이 책을 완독하는데 10시간은 넘게 걸린다. 그래도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이 책에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묻는다면, 충분히 그렇다 대답하겠다.
우리가 홀로코스트를 보고, 막연히 갖는 이미지가 있다. 나치, 유대인, 학살, 가스실,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단어가 그것이다. 하지만 홀로코스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무지로 가득하다. 우리가 가진 무지를 보여주고자, 단순한 질문 몇 개를 던져보겠다. 나치는 언제부터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는가? 홀로코스트에서 죽은 유대인의 숫자는 얼마인가? 홀로코스트라는 전무후무한 과정에서, 나치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유대인을 학살할 수 있었으며, 유대인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학살당했는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떠했는가? 이 질문에 얼마나 대답할 수 있었는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의문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는 이 사건을 우리는 너무나 흐릿하게 알고 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가 갖는 그 막연한 이미지를 타파하고 홀로코스트의 진면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반유대주의가 나치즘의 전유물이 아니라 유럽의 깊은 역사라는 사실.
정의-집중-파괴, 이 3단계로 홀로코스트를 설명하는 논리 있는 주장.
나치가 유대인을 골라내고, 한 곳으로 모으고, 철저히 부숴버리는 과정.
나치가 처음부터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충격적인 주장.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거나, 자신을 위해 협조한 수많은 독일인.
홀로코스트를 알면서도 보고만 있었던 연합국, 그리고 외국의 유대인들.
스웨덴이 덴마크와 노르웨이에 있던 유대인을 구조하기 위해 분투한 일.
덴마크에서 유대인이 나치로부터 탈출할 때, 덴마크인이 자진해서 유대인을 도와준 사건.
아우슈비츠로 보낼 유대인을 선별해야 했던 유대인 평의회.
동부전선에서 학살한 기동부대원, 학살당하는 유대인의 심리.
철저히 살인과 파괴, 착취와 약탈로만 기능하는 아우슈비츠의 구조와 원리.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런 거악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
이 모든 것, 그리고 이 밖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모든 게 여기 있다.
…새삼스럽겠지만, 올해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우리가 광복을 맞이하고 70년이 흐른 해다. 70년, 2세대 남짓이 흐른 시간이다.
씁쓸한 사실이지만, 그 사이에 서양은 일제를, 동양은 나치를 잊었다. 그리하여 서양은 위안부를, 동양은 홀로코스트를 모르게 되었다. 이렇게 불편한 거악의 망각은 진행되고, 불쾌한 과거와의 단절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막는 방법은 불편하더라도 거악을 기억하는 것이고, 불쾌하더라도 과거와 소통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