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말했다. “다음 생에 만나면 그때는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 끝까지 같이 있자.”
남자는 최악의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비겁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모든 사랑의 끝은 다 비겁했다.
뜨거울 땐 누구나 영원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 약속의 유효기간은 사랑이 식어버림과 동시에 끝이 난다.
두 사람 모두 영원을 당연시 했지만 결국 이별을 말하고 동의 하에 뒤돌아버렸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지만 자라온 환경도, 생활 환경도, 성격도 달랐다. 이는 여자에게 절대 좁혀지지 않을 간극이었다.
얼마 쯤 지나 그 둘은 다시 만났다. 여자는 여행을 다녀왔다는데 평소와는 달랐다.
“겨우 몇 분 걸었을 뿐인데 국경을 넘으니 참 다르더라. 아주많은것이 선 하나를 두고
한순간에 달라지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어. 그러다가 국경을 넘어서 시집 왔다는 할머니를 만난적이 있어.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웃으시며 말씀하시더라. 어디에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곁인가 하는 거라고. ” 그녀는 미안하지만 간절하다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그 손을 잡았다.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들이 끝까지 함께할 시간은 다음 생이 아니라 이번이라는 것을 남자는 알았다.
반면 한번의 헤어짐의 사유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었거나, 진실로 용인되지 못할 두 사람의 차이점이라면 위 남녀처럼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책을 읽고 당시 이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내 마음은 엉망이었다.
나도 왠지 간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면 돌아와 줄 것만 같았고 새로운 사랑을 했을 때 이상적인 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고, 때문에 새로운 사랑도 할 수 없었다.
현실은 책 속 파스텔톤의 하늘색이 아니었다. 검정색이었고, 붉은색이었다.
다시는 누군가를 좋아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또, 다시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염세주의에 물든 나는, 문득 지나간 사랑에 연연하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갈 반직선 위에 찍힌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졌다. 익숙한 사랑도 좋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질 나도 기대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