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용기부여를 통해 내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고 ‘이상적인 나’를 건설해서 그와 나를 비교해 지금의 나보다 앞서나가자고 독려한다. 아들러 심리학은 타인을 바꾸라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바꾸기 위한 이론이다. 자크 라캉은 “인간은 욕망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인간을 명명함으로서 인간 주체는 유동성을 띈다고 말했다. 가령 누구든 어떤 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일이 어려울 때가 있다. 이는 나 스스로가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이다. 개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고자 할 때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는 우리 평생의 과제이다. 이를 피해보려고 아등바등하며 인생의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목표를 정하고 극복해 나가는 일이 훨씬 현명할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태에 직면하고 ‘미움 받을 용기’도 있어야 한다. 반면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다. 타자들의 평가에 민감했고 그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아들러 심리학에 의하면 이는 나와 세계 간의 과제를 분리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했다.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 또한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으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니다. 반대로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인 발상이기에. 욕망이나 충동에 이끌려 사는 것이 ‘자유’일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위해 비탈길을 계속 굴러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내 인간관계의 열쇠는 언제나 내가 쥐고 있으니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서점을 갔다가 노란색의 예쁜 표지에 이끌려 집어든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보는 내 눈을 바꾸어 주었다. 웃긴 이야기로 웃게 하고, 슬픈 이야기를 해서 울리는 책들도 좋지만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삶에 대해 말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빠트리기도 하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것, 정답은 없을지언정 독자의 자발적인 질문과 대답이 터지는 작품이 정말 좋은 텍스트가 아닐까?
이 책 한 권을 통해 저자와 동화되기 보다는 이화되어 내가 ‘능동적인 해석자’가 된 듯, 마음이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다.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내 마음대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떠한가? 내 마음은 이리도 풍요로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