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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사회의 괴리
저자/역자
조세희
출판사명
文學과 知性社 1985
출판년도
1985
독서시작일
2013년 04월 11일
독서종료일
2013년 04월 11일
서평작성자
**

Contents

     소설집이지만 결코 소설집이 아닌 것 같다. 앞에서 나왔던 아버지가 다음 편에 아버지로 또 나오고 어머니로 나왔던 사람이 그 다음 단편에 또 어머니로 나오고. 자녀들보다 부모들이 상이하게 묘사되고 그려진다는 것은 또 다른 시대적 슬픔이다.


 


     이 소설은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신경숙에게 선생님이 추천해준 소설이기도 하다. 엄마를 부탁해, 리진 등을 써낸 최고의 소설가들 중 한 명에게 영향을 끼친 책이다. 그 때 신경숙 소설가가 어떤 점을 느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점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소설을 읽고 나면, 단편을 다 읽고 나면, 무언가 가슴에 쌔한 기운이 느껴져 오는 건 어째서 일까? 조세희 소설가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책이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팔리는 것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이 책이 지금까지 팔리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을 내었던 그 시대와 지금 시대가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 시절의 아픔을 지금도 공감하고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역으로 책이 덜 팔려야 한다고 말했다. 3판,4판을 거듭하며 팔리는 책을 보고 작가가 느낀 아픔을 우리도 모르지 않는다.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편에서 ‘나’의 단호한 어조는 너무나 명확하고 정확해서 더 슬프다. 수습공 정도의 월급, 시간당 임금이 수시로 덜 지급되고 아홉시간이상씩은 너무나 당연하게 일하는 현실은 법과 괴리가 크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그 때 당시에도 근로기준법같은게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위에서 말하는 노동자들의 부당함을 근대사를 배우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배워왔기 때문에 법과 같은 제도가 당시에는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버젓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았고 그 불문율은 개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체에서 통용되는 문제였다는 점. 이것이 충격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법이 이렇게 힘이 없었나? 법과 노동자의 거리가 이렇게나 멀었나? 자꾸 절망감이 들었다. 오히려 안다는 것이, 정확히 안다는 것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 것 같다. 소음규정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면 시간당 얼마를 받는지 몰랐다면 법규정을 몰랐다면, 마지막에 ‘나’가 지부장에게 항의하는 그 장면이 그렇게나 아프고 슬펐을까?


 


     이 책에서는 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특히 노동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소설이 많다. 여기서 다시 물어 볼 수 있는 점이 그 당시 지식인의 역할이다. 대학까지 나온 고도의 지식인들은 이 시대에서 어떤 일을 했을까?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육교 위에서’에서 원고를 불온한 글이라고 딱 잘라 거절하는 교수의 태도를 보면 그 시대 지식인의 모습이 짐작이 간다. 제자가 반대를 말할 수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이며 이것은 교수님도 이미 알고 있다고 정확히 말했을 때 교수는 계속해서 윽박지르지 못한다. 제도와 사회를 연결시켜야 할 지식인들이 시대의 분위기에 눌려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때, 나는 그것만큼의 비극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은 계속 모르게 되고 아는 사람은 아는 것을 뒷세대로 전달하고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점점 적어지고 계층간의 경계가 굳어지는 무서운 현상. 이 현상의 원인에 지식인이 있음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사회에서 실현되지 않는 제도는 의미가 없고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역시 불행하다. 단편들 중에서는 이 명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소수로 나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속에서 가장 고통받는 존재 역시 이들이다. 당연한 이 명제를 차라리 잊는 것이 낫지만, 잊지 못하고 계속 발버둥쳐서 결국에는 일터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힘없는 노동자들이 가장 고통을 받았다. 이 책이 지적하는 바는 바로 이 점인 것 같다. 제도가 사회에 정착할 수 없는 이 기이한 현상. 차라리 없었다면 이라고 자꾸만 더 비극적인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 괴리감과 위화감의 시대. 작가의 말대로 이 책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지금도 그 괴리를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회 구성원이 사회를 신뢰하지 않고 미래 세대를 생각하지 않으며 지극히 현실만을 살아가고 있는 점이 이 소설을 더욱 사랑받게 한다. 정말, 이 책이 소설사를 배울 때 ‘이런 시대가 있었구나’ 라고 알려주는 문헌역할을 할 날이 가까운 미래에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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