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을 제일 처음 접했을 때는 복수극 같은 가벼운 소설로만 보고 책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전반부로 그칠 줄 알았던 텍스토르 텍셀의 존재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책 1/3을 읽고서야 이 책이 자아에 관련된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롬 앙귀스트가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 속의 적, 텍셀에게 넘기고 자신은 정상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속에 적을 두고 그 적을 화장으로 가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 역시 작은 일이지만 내 속의 다른 ‘무언가’에게 내 잘못을 맡겨버린 채 나는 나 몰라라 한 적이 사실이고 말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내면의 적과 싸우면서 그 적을 죽으려다가 자신을 죽인 것은 아닐까, 혹은 살인자의 심정이 이렇게 자신이 지은 죄를 다른 적에게 맡겨버리고 사건을 저지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적에게 많은 자리를 내 주면 내줄수록 적은 점점 커지는 것 같다. 마지막 “자유,자유,자유”를 외치며 죽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진 텍셀과 불거진 텍셀의 말에 죄책감을 토하는 제롬 앙귀스트의 소리같아서 이다. 가볍게 읽었을 때는 뭐 이런책이 다있어 했지만 곱씹어 볼 수록 깊게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