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집었을 때는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탄탄한 스토리와 넘치는 긴장감으로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 수록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느낌에 의아했지만 다른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또 그 신뢰에 부합할 만큼 탄탄한 긴장감이 소설 전반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헤이스케의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한다. 그 평범한 일상은 아내 나오코와 딸 나오미가 탄 버스가 사고를 일으켜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뉴스로 인해 깨진다. 아내는 딸을 보호하려다 목숨을 잃었고 딸은 기적처럼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고 살아나지만 어쩐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나오미는 자신이 나오코라고 고백한다. 헤이스케는 딸의 모습을 한 아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분명 딸의 모습이지만 아내라고 믿게 할 수 밖에 없는 어떤 느낌에 의해서다.
나오코는 딸 나오미의 모습을 한 채 자신이 바라왔던 딸의 생활을 이어간다. 중학생이 되면서 점점 여자가 되어 가면서 나오코의 정신인데도 ‘아빠’헤이스케와의 목욕을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또래 남학생과 몰래 연락을 하기도 한다. 헤이스케는 아내와 함께 살지만, 절반의 부부생활을 하고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10대가 된 것을 즐기는 것 같은 아내를 동시에 느끼며 외로움과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헤이스케와 나오코는 딸 나오미가 없는 상태로 함께 5년을 살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딸의 마음, 그런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참 신선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짠하기도 했다. 특이한 소재로 글을 썼지만 곳곳에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빠를 좋아하던 딸은 나이를 먹어갈 수록 아빠를 멀리하게 되고, 아빠는 비밀을 만들며 점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가는 딸을 보며 조금의 질투, 불안함을 느낀다.
또 어쩌면 경험해 본 적 없기에 더욱 가슴아픈 감정선도 있었다. 딸 나오미가 돌아오기 위해서는 아내 나오코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둘은 알고 있다. 나오미가 돌아와 있는 시간이 길수록 나오코가 사라지는 시간도 길다. 나오미가 제대로 돌아왔기에 기뻐해야 하지만 이제 정말 나오코를 보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와 기약이 없으면서도 있는 아픈 사랑을 한다. 또 헤이스케 곁에는 나오코가 있지만 절반의 나오코만이 존재한다. 밖에서는 아내라고 해서도 안되고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서로를 아빠, 나오미 라고 부른다. 마음만은 예전의 아내지만 딸의 모습을 했기에 어떤 부부관계도 할 수 없다. 굉장히 아슬아슬한 사랑이었다.
이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담고 있지만 이렇게 세 사람의 뒤얽힌 감정이 돋보였다. 이해가 가도, 가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은 어떻게 될까 궁금하게 만드는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추리소설의 긴장감을 가진 사랑이야기를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