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를 넘겨 가장 앞장에는 아이즈 나오키라는 사람이 쓴 서평이 나온다. ‘낙하하는 저녁’은 시간의 소설이다. 라고 쓰여있다. 평소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정말 좋아해서 집에 소장해 두고 몇 번이나 읽은 책이다. 읽을 수록 시간의 소설이라는 표현이 와닿는다.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묘사한다. 8년 간 사랑해온 남자친구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고작 사흘 만에 남자친구 다케오는 리카와의 사랑을 정리한다. 그 이유는 하나코라는 인물 때문인데, 사실 이 이야기는 리카가 실연하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평화롭던 일상에 불쑥 들어온 불청객 하나코를 리카와 다케오, 또 그 주변 인물들이 여러 시각으로 관찰해나가는 일종의 관찰일지 같다.
하나코를 사랑하는 다케오에게 하나코는 아무리 사랑을 보내도 닿지 않는 사람. 연적이자 동거인으로서 바라보는 리카에게 하나코는 미워해야만 하지만 미워할 수 없고, 곁에 있지만 없는 것 같은 투명한 사람이다. 하나코 때문에 이혼까지 한 카츠야에게는 희망고문 같고, 그 부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소설 중에서 하나코는 인기가 많다. 유아스러운 몸매에 예쁜 얼굴, 한치에 무게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 누구에게도 마음을 더 나누어 주지 않지만 남자들은 받아주지 않는데도 이혼을 할 만큼, 8년의 사랑을 사흘만에 저버릴 만큼 하나코에게 푹 빠진다. 리카도 함께 살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납득한다.
누구나 하나코를 찾고 사랑하지만 정작 하나코는 극 중에서 가장 외로운 인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소한 일상에서 오는 행복, 돌아가고 머무를 곳이 있다는 안정감 같은 것을 알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유대도 하나코는 모른다. 글을 읽고 있으면 하나코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라디오를 들어도, 다케오를 만나러 가도, 밥을 먹어도 하나코는 인물들의 일상을 헤집어놓지만 정작 자신은 그 어떤 것에서도 관계를 맺지 못한다.
결국 소설은 하나코의 자살로 마무리지어진다. 마치 원래 없던 사람인 것 인냥 사라진다. 아무도 하나코의 장례식에서는 울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코의 죽음에 어쩐지 편안해한다. 분명 불청객인데도 리카는 하나코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떠올린다. 하나코는 모순적이라는 표현이 글에 나온다. 그 말처럼 하나코를 좋아하는데도 하나코가 사라져 편안해지는 결말이 모순이지만 어쩐지 나 역시 납득이 간다. 사랑스럽고 밝으면서도 외롭고 쓸쓸한 하나코를 한번쯤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