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 이왕 읽기로 결심한 거 교양필독서들 중에서 골라 읽고 있다. 원래 세계 문학 전집 코너 쪽에서 소설을 골라 읽었었는데, 우연히 한국 소설 파트를 지나가다가 이승우의 소설집을 발견했다. 문학에 대해서 원체 아는 게 없기도 하고, 고전이나 정말 유명한 작가 아니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경우가 많은 나라서, 이승우라는 작가 역시 이번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오래된 일기는 총 아홉개의 단편이 수록된 이승우의 단편 소설집이다. 읽은 지 몇달 지나서 서평을 쓰려니 좀 헷갈리기도 한다. 오래된 일기는 제일 처음 등장하는 단편의 제목이다. 그리고 이 단편들 중에서 가장 찡하게 읽었기도 했다. 오래된 일기는 가정 형편 상 다른 친척의 집에 얹혀 살게된 ‘나’와 그집의 아들 이야기이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왜 찡하게 읽었냐 하면은, 그 집의 아들은 문학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고 열의가 있다. 그러나 재능은 없었던 거다. 그에 반해 ‘나’는 문학에 관심은 없었지만 재능이 있었던 케이스다. 젊은 시절엔 그러려니 했었지만, ‘나’는 문학도로써 성공하여 승승장구 하고 ‘그’는 성과가 없었던 거다. 결국 집을 떠나게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죽음의 문턱에 있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는 ‘나’가 처음 썼던 소설을 그 때까지 간직하고 있다.
안타까운 이야기다. 재능이나 끼가 없지만 그것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놓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와, 흥미나 관심이 그닥 없었지만 그 쪽으로 재능이 있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 특히 전자와 후자가 친한 사이일때는 더더욱. 읽을 때는 ‘은교;를 알기 전이었는데, 서평을 쓰면서 생각하니 ‘은교’의 서지우 생각도 나고 한다.
또 이승우의 단편 중에서 가장 흥미있게 읽었던 건 전기수 이야기, 이다. 전기수라는 건 말벗이 필요한 사람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읽어주는 거다. 그냥 단순히 미래에 이런 직업이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보다는 우리 사회가 그정도로 외로워지겠구나 싶어서 씁쓸하게 읽게 되었다.
소설의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크게 공감하며 읽었던 부분을 기록해 둔다.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해야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형벌인지는 코린트의 왕 시시포스의 교훈을 통해 잘 알려져 있지 않나. 자꾸만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되풀이해서 밀어올려야 하는 그 형벌이 무서운 것은 육체적으로 힘들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반복이 굴욕과 권태를 선물하기 때문이지.
나는 어린 아이들이 순진하다는 믿음은 어른들이 대놓고 속아주는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순진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순진함은 때로, 그것이 악인 줄 모르고, 왜냐하면 순진하니까 악마를 연기하곤 한다. 악마가 순진함의 외양을 가지고 있든, 순진함이 악마의 내용을 가지고 있든 무슨 차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