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라는 로알드 달, 이 책을 통해 처음 그를 만나보았습니다. 외국고전소설에 익숙한 저에게 그의 작품은 낯설고 당황스럽기까지 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저 역시 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데뷔작인 <식은 죽 먹기>가 가장 인상 깊습니다. 달은 ‘다시는 실화를 쓰지 않겠다’, ‘이야기를 창조할 때 가장 즐겁다’고 했지만 이 단편이 아니었다면 저는 달을 이해하지도 좋아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처음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나 <히치하이커>를 읽을 때는 많이 당황하고, 또 황당해했습니다. 특히 <히치하이커>을 읽고 오랫동안 벙 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혹을 쑥 빼놓는 요란하고 화려한 번개 뒤에 따라오는 은은하고 진중한 천둥처럼 그의 이야기 속에 ‘무엇’이 담겨 있다는 것을, <식은 죽 먹기>를 읽고 알았던 겁니다.
<식은 죽 먹기>는 달의 데뷔작이자, 경험담입니다. 공군으로 전투에 나간 그는 적군 앞에서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실제로 벌입니다. 그 누가 수 백 대의 전투기 앞에서 농담을 버럭버럭 지르고,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그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슬쩍 웃었습니다. 그것을 동질감…… 또는 공감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나도 왠지 이럴 수 있었을 거 같아.’ 허세나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좀 전에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랬지만 사실 누구나 그런 생각이 의식에든 무의식에든 그 안에 있을 겁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광기(狂氣). 그러나 그것은 좋은 의미의 광기입니다. 이런 걸 사람들은 애칭으로 ‘똘끼’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즐겁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광기, 그것이 똘끼입니다. 그것이 기발함이고, 유쾌함이고, 긍정(肯定)입니다. 달은 그 때 공포에 질려 미쳤던 것도 현실을 도피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어떤 환경에서도 긍정이라는 송곳으로 현실을 찔렀던 겁니다. 이 긍정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온유하고 온화한 그런 느낌은 아닙니다만……. 이 단편을 통해 그의 단편 모두가 그러한 긍정으로 덮여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실화니까, 실제의 그와 상상 속의 그가 다르지 않으니까― 그가 그려내는 허구, 단편들도 그런 진실한 밝음으로 바라보는 진실입니다. 그래서 그의 단편은 모두 허구이면서도 진짜입니다.
앞서 읽었던 그의 단편 내용을 떠올리며 그 안에 있는 밝음을 더듬어봅니다. 초능력을 손에 넣은 헨리 씨가 선택한 삶에서 따뜻함을(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기막힌 소매치기 솜씨의 ‘손가락 세공사’와의 만남에서 행운 같은 유쾌함을(히치하이커), 백조의 날개를 달고 뛰어내린 소년에게서 숭고함을……(백조). 로알드 달, 그의 이야기는 즐겁습니다. 그리고 즐겁기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블랙 코미디 같은 씁쓸함도 아니고, 당의 입힌 약그릇의 맛도 아니고, 딸기나 수박의 씨앗처럼 먹으면 뱃속에서 새싹이 날 것 같은 그런 맛입니다.
소설은 허구라며 싫어하는 사람이 문득 떠올라 몇 자 더 적어봅니다. ‘진짜’소설은, ‘진짜’ 허구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현실을 도피하게 하거나 쓸데없는 위안을 주는 것은 소설이라 불릴 수 없는 것이며, 현실을 알게 해주고 나가갈 힘을 주는 것이 진짜 소설이라고. 마치 거울에 비친 가짜 나를 통해 나를 똑바로 보고 알 수 있듯이, ‘진짜’ 가짜란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에 용이 나오고 기사가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없고, 자동차가 굴러가고 멀쩡한 남녀 둘이 걸어간다고 해서 반드시 사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주로 재벌 2세나 학교 짱과 평범한 여자 또는 여학생이 눈 맞는 이야기)도 덧붙여 말해주고 싶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소설을 허구하며 싫어하는’이 사람은 허구 중의 허구라는 판타지를 무진장 싫어하거든요. 그 말을 해주며 로알드 달을 소개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