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는 대단한 사람이기 이전에 대단한 ‘여성’이다. 이 말은 여성 중에서 대단했다는 말이 아니다. 여성으로서 대단했다.
내가 힐러리 여사가 대단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던 때는 중학교 1학년 도덕시간에 존경하는 인물란을 적을 때였다. 당시에 딱히 존경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대충의 마음으로 힐러리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와 화가 모네를 동경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대답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중학생시절 멋도 모르고 쓴 나의 존경하는 인물란은 틀리지 않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 대단한 힐러리도 유순하며, 적이 없고 날지 못해 멸종되었던 도도새와 같은 삶을 살았던 적이 있었다. 남성에게 통제받았던 그녀는 self-talk로 스스로 정신 혁명을 시작한다. 약한 마음이 들 때, 그녀는 강한 독수리의 삶을 택했다. 남성의 공격에는 더 큰 공격으로 대응했다. 힐러리가 뛰어들었던 정치계는 특히나 남성우월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였던 그녀는 절대로 약자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더 위에 현명하게 군림했다.
그리고 나는 무슨 삶을 살아왔는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자기변명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굳이 성공을 거두어야하는걸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그저 안분자족하고 살아가진 않았을까. 은연중 골방철학자가 되고 싶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포기에 가까운 발상이다.
조선 그 시대에 살았던 정약용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우둔한 지식의 사람들은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 생각했지만 방안을 실현시키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속에서 정약용은 당당하게 실학을 외쳤다. 그는 다른 이를 닭으로 만들어버리고 자신은 학이 되었다. 군계일학이다. 성리학자들은 스스로를 학으로 여겼다. 그들의 눈에 정약용은 한 마리의 촌닭에 불과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백성들을 아우를 수 있었단 정약용이야말로 단연 빛나는 한 마리의 학이었다.
힐러리 역시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
이 책은 보랏빛 소인 그녀의 원칙을 공개적으로 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