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소설을 최근에 읽은 게 아마 4년전이었을거다. 그 이름도 유명한 루쉰. 계산으로 치자면 나는 근 4년만에 중국 현대소설을 읽은 터. 그리고 위화라는 소설가 작품도 처음이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허삼관 매혈기가 생각나지 않겠는가. 얼른 일어나서 샀는데 나는 이 책이 허삼관이라는 사람의 피파는 기록인줄 몰랐다.
작가는 분명 삶을, 인생을 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주인공에 몰입하기는 또 처음이다. 분명 소설의 결말부분도 아닌데 그 사이에 얼마나 나를 웃기고 울리던지 말도 못한다. 허일락과 허삼관의 관계에서 오는 인정스러움 – 어떻게 친자식이 아닌 아들과 그 양아버지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이렇게도 상투적이지 않고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지 – 과 근룡이와 방씨 그리고 허삼관 사이의 또다른 매혈우정이란.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결말까지도, 마지막 끝나는 그 문장 하나까지도 마음에 들까. 나 허삼관 매혈기 예찬론자다.
울고 웃으며 서로를 보듬어주는 그게 바로 인생아닌가. 싸우고 달래주고 헐뜯기도하고 감싸주기도하는 그게 바로 인생아닌가. 허삼관의 마르지 않을 것 같던 샘물도 결국은 사람때문에 가능했고, 샘물이 마른 삶의 마지막 즈음에도 사람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는가. 아 이 소설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그래. 돼지간볶음 한접시에 울고 웃는게 사람아닌가…
어쩌면 허삼관은 우리들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
해학적인 웃음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 강렬한 필체는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위화의 다른 소설도 읽어볼 작정이다.
나도 허삼관 매혈기처럼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소설은 중국에서 영화화되고 있다는데 다행히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지앙 웬이 감독을 맡아서인지 참으로 안심이 된다. 빨리 극장에서 허삼관 매혈기를 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