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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은 오타루
저자/역자
임대형
출판사명
출판년도
2020-01-06
독서시작일
2022년 12월 23일
독서종료일
2022년 12월 23일

Contents

잠이 오지 않아 책을 꺼낸다. 아랫목이 아닌데도 방바닥은 따뜻하다 못해 뜨끈뜨끈한데, 닫힌 창문 밖에서는 찬바림이 매섭게 불어온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겨울이다. 눈이 내리지 않는 부산임에도 이렇게까지 춥다면, 눈이 내리는 마을에선 지금 내가 있는 이곳보다 더욱 찬 바람이 불 것이다. 그리고 또 어쩌면 그 마을의 누군가는 어떤 이름을 불러볼지도 모른다. \’윤희에게.\’ 그렇게 부르던 이름은 이어 앳된 학생의 목소리로 변할지도 모른다. \’잘 지냈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책의 첫 시작은 그렇다. 바다를 넘어, 편지의 발신인과 수신인의 가장 곁에 있는 사람이 서로의 편지를 주고받는 매개체 역할을 해준다. 쥰의 고모 마사코와 윤희의 딸 새봄.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중년 퀴어 로맨스 작품이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얘기하고, 나도 역시 그렇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가치가 그에만 중점되어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윤희와 쥰, 윤희와 새봄, 쥰과 마사코, 새봄과 마사코, 더불어서 새봄과 경수. 인호, 은영, 용호, 옥화, 류스케, 료코 등등. 이 작품에서 어느 누구도 윤희의 전남편이나 새봄의 삼촌, 쥰의 사촌 등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름이 있다.

그들의 이름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점부터, 또 새봄과 마사코가 함께 주역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이 글이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단순히 퀴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이다. 옛 시인이 얘기하는 숭고한 사랑이나, 처절한 사랑이나, 성숙하고 완벽한 사랑은 아니고 현실에 내던져진, 나카무라 유코 배우의 말을 빌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 그게 상투적인 가족애(윤희와 새봄/쥰과 마사코)라거나 흔히 청춘이라 불리는 사랑(새봄과 경수)과는 맞닿아있지 않는, 보편적이지 않은 무해한 사랑. 누구에게도 무해한 사랑. 지금 우리가 이 시대에서 추구해야하는 사랑. 글에서 이들이 보이는 사랑을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임대형 감독이 의도하고자 한 \’아름답지 않은 오타루\’와 비슷한 의미다. 사랑은 우리의 삶이다. 그건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울 수 없다. 강인하지도 않고, 모든 역경을 헤쳐나갈 돌파구도 되지 않는다. 그건 정말 소설이나 영화속 일이다.

옥화가 윤희의 부재를 대신 채워주고 양배추를 썰어준 일, 경수가 카메라를 배우고 오타루까지 온 일, 은영이 새봄과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었던 일, 인호가 울면서 윤희에게 청첩장을 건넨 일. 그런 일이야말로 우리의 사랑이다. 다정하고, 철없고, 따스하고, 짠하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윤희와 쥰의 사랑을 우리의 일상적 사랑으로 감추고 싶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용호가 되면 안 된다.)

아무래도 이 책은 영화의 시나리오이기에 영화를 배제하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 시나리오를 꼭 읽었으면 한다. 영화에 미처 다 담기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이 시나리오에선 그들의 무해한 사랑이 잘 드러난다. 글을 읽다보면 괜스레 마음이 쓰이는 인물이 생길 것이다. 그게 꼭 지금 자신 같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에서, 어떤 성질에서 동질감을 느꼈는지는 몰라도. 이 무해한 사랑과 사람들은 위로를 준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겨울이다. 눈이 내리지 않는 부산임에도 이렇게까지 춥다면, 우리도 윤희에게 편지를 쓰거나 쥰의 꿈을 꾸는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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