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보지 않은 사람, 있을까?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렇듯, 닥쳐올 미래에도 우린 모두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기에 반드시 겪게 될 것이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상실’과 그를 추억하고 간직하는 ‘애도’. 이를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다뤄 죽음과 애도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 소설이 있다. 『구의 증명』은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사랑이란 감정을 가장 극단적인 식인의 형태로 구현한다.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 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p.20)
‘구’의 죽음에 ‘담’은 그의 시신을 먹어 치우는 ‘식인 행위’를 통해 그의 존재가 소멸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자신의 육체를 구의 무덤으로 생각하고 온전히 담아내며, 구를 외부의 폭력으로부터 단절시키고 끝까지 함께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계속 해서 보여준다. 즉, 담의 애도는 ‘식인’의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회에 자리 잡은 애도의 방식과는 완전히 상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담은 구를 ‘먹음으로써’ 대상을 ‘상실’하지 않는다. 되려 ‘품어냄’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지켜내고, 영원히 자신의 안에 간직하게 된다. 구를 잃는 것은 곧 담을 잃는 것이므로, 담은 자신과 동일시하는 구를 먹음으로써 자신을 지켜 내며 사랑의 형태를 완성한다. 또한 작가는 구의 죽음 이후에도 구의 시점(구의 독백)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여 담에게 이야기하듯 서술해 나간다. 이를 통해 죽음으로 인한 ‘단절’이 아니라 둘은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구와 담의 관계를 통해 작가는 죽음과 애도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너’를 애도함을 넘어 ‘나’와 ‘네’가 하나 되려는 담의 노력은 결국 식인 행위를 통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애도로 이어져, 마침내 일인칭, ‘네’가 아닌 ‘나’로 ‘너’를 동일시하는 죽음이자 애도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담의 첫 번째 증명이다. 구(九)를 자신의 안에 영원히 존재하게 하여 그를 증명해 내고 구(球)가 되어 가장 이상적인 형태(완전한 구체)로 사랑하는 이의 존재를 보존하며 다시 증명한다.
『구의 증명』은 개인적 야만과 사회적 야만으로 나누어서 해석해 볼 여지가 있다. 세상으로부터 구를 지키고자 식인을 행했던 담의 개인적 야만과 구를 죽게 만든 원인이 된 자본주의(돈, 사회 적 약자)의 사회적 야만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개인적 야만은 담에게서 아주 잘 드러난다. 보편적인 사회 규범이나 윤리를 완전히 벗어날 뿐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로 담은 구를 먹었다. 식인은 근친, 살인과 비교해 보아도 인류 역사상 강력한 사회적 금기이다. 담은 이 금기를 깨뜨림으로써 가장 비인간적인 행위로 가장 인간적인 사랑이란 행위를 실행했다. 담에게 이 행위는 단순한 육체적, 정신적 욕망이 아니라 사회가 끊임없이 부정해온 사회적 약자 구의 존재를 자신과 하나 되게 하여 소유하려는 행위이다. 이것은 담에게 두 번째 증명이다. 구를 소멸시키지 않고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 야만적인 식인 행위였다. 하지만 이를 통해 영원한 사랑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비극적인 동시에 처절하면서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통해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구 형태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에서 가장 하위에 있는 생리적 욕구는 생존과 직결된다. 담은 단순한 육체적 배고픔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정신적 상실로부터 굶주림을 느낀다. 식인 행위는 굶주림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 살아가기 위한 생존 행위로 볼 수 있다. 또한 구의 살과 머리카락 등을 먹음으로써 구가 자신의 안에 실재한다는 안정감을 통해 생존의 욕구를 얻는다.
사회적 야만은 개인의 삶과 존엄성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사회 구조로, 가난한 사회적 약자인 구를 자본과 폭력을 통해 죽음으로 내몰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냉혹함은 돈이 없는 구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기회조차 주지 않고 꾸준히 그를 배제시킨다. 구의 죽음을 통해 사회 구조의 폭력성과 야만을 고발한다. 담이 끊임없이 증명하고자 했던 구의 존재를 그들은 부정했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사회에서 사랑은 종종 행복이라는 결과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구와 담은 이미 사회 구조의 폭력성으로 인해 행복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몰려 있다. 결론적으로 담은 사회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서 구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이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그들의 삶을 사랑을 통해 스스로 구원하려는 자아실현의 일종이자, 세상이 모두 등을 돌려도 우리만큼은 함께라는 강한 의지의 유대를 드러낸다. 이는 사회적 야만으로 인해 가장 기본적 욕구가 좌절된 상황에서 개인적 야만으로 충족시켜 완성해 낸 담의 절박한 사랑의 역설이자 증명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사랑은 단순하지 않으며, 외부 요소로 인해 무너지는 가벼운 감정이 아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사랑뿐만 아니라 죽음과 애도, 상실과 사회 구조, 자아실현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구의 증명』은 독자들에게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보편적 감정이 사회적 구조 앞에 무너지는 시대에 “가장 원초적인 ‘사랑’은 무엇으로 증명해내야 하는 가?” 하는 아픈 질문을 던지는, 강력한 문제작으로 오래 회자될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많음에도 그것을 증명해 내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미 담을 통해 그 질문에 답했다고 생각한다.
담의 모든 증명은, 구
구의 모든 증명은,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