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제목은 참 이목을 끄는 제목 같다. 이름을 붙인다는 건 사랑하는 대상을 위함이고, 그것을 며칠은 먹었다는 건 그 사람과 동화되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사랑 더하기 사랑 같은 제목 때문에 시집이 생소한 나도 이 책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저자 박준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2017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시집으로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인은 신문에서 짧게 보도된 반디 미용실 화재 사건, 유성 고시원 화재 사건 등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사건을 잡아 이야기한다. 이는 아마 박준 시인이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 같다.
다음은 시집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과 나의 생각이다. 아직 시집이 익숙지 않아서, 시인의 의도보다 내 경험에 기대어 시를 읽게 된다. 그중 시집에서 만난 몇 구절이 인상 깊어 내 감상을 간단히 기록해 보려 한다.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 「환절기」 中
꿈을 향해 가는 길은 거리가 멀고 바다같이 망망대해 같아서, 앞만 보다가는 길을 잃기 쉽다. 나도 내가 타고 있는 배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어서 두려웠다. 주위를 둘러봐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겨우 안개가 걷히고 주변을 인식하게 되었지만 사람들이 가는 길과 한참 떨어진 것 같아 무서웠다. 그러나 내게도 출발한 섬이 있었다. 비록 남들과 다른 경로로 갔을지언정 꿈을 가지고 바다로 출항한 것이었고 길을 잃어도 열심히 노를 저은 나의 삶이 있었다. 남들과 같은 속도일 순 없어도 내가 열심히 노를 저었던 과거를 간직하고 애썼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길을 나아가고자 한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러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의 창마다 새겨놓고 있었습니다.” – 「눈을 감고」 中
한 번 잃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한 번 방황해서 오래도록 고립되었던 어둠을 기억해서, 다시는 그 길로 들어서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주저했던 발걸음이 나도 있었다. 용기 내어 한 발짝 내딛어도 끈적거리는 그림자처럼 그때의 기억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시간이 지나 주변을 점점 인식하게 되자 놀랍게도 두려운 감정은 사라지고 새로운 기억이 덮어졌다. 두려움을 완전히 덮을 순 없겠지만 새로운 기억과 감정이 새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정말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내가 느낀 감정을 섬세한 단어로 그려놓은 것 같아 인상 깊었다.
“나도 당신처럼 한 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 내가 살이 있어서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저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이 세상에도 두엇쯤 당신이 있다. 만나면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책의 앞날개에 놓여 있는 시인의 말이다. 시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닮고 싶어 시를 쓰게 되었다면, 시인이 사랑하는 당신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리고 내 삶에도 사랑해서 닮길 바라는 이가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보편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고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아 더욱 마음의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처음엔 시집을 이해할 수 없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두세 번 소리 내 읽어보면서 조금은 시와 친해진 느낌이었다. 온점 하나 조심히 사용하는 시의 섬세함을 읽다 보면 비록 완전히 이해는 못 해도 시를 정성 들여 쓴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했다. 시집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주변인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박함을 그리고 있는데, 결국 산다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같다. 마음에 꽂히는 구절이 많은 시집이기에 편하게 시를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박준 시집을 읽어보길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