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표지만 봤을 때는 어떤 내용이 책 안에 담겨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여름에 관련된 책이겠지 막연하게 생각하였지만, 소설일지 에세이일지 시집일지 고민을 하기도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하였다. 책을 읽기 전 이 책은 몸 안에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고민해보는 시간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책을 처음 펼쳐보았을 때, 나의 생각보다 더욱 큰 기대감이 느껴졌다. 평소 단편 소설을 좋아하던 나였기에 너무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이유 없는 다정함을 말하고 있는 김연수 작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2023년 6월 26일 출판사 레제에서 출판된 소설이다. 김연수 작가는 1970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 시를 발표하였다. 1994년 장편 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밖에도 다양한 상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이밖에도 <스무살>, <사월의 미> 등 다양한 작품을 내며 활동하고 있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왠지 싱그러움과 그리움이 항상 같이 있는 미묘한 날들인 것 같다. 활기차고, 밝고, 웃기만 하는 계절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장마의 날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책도 우리의 곁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여름을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이라는 게 막연하다고 생각해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지만, 이 책은 우리가 한 번씩은 겪어보았을,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크게 어렵지 않은 책이다. 또한, 장편 소설집보다 단편 소설집이 소설을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좋다. 숨을 길게 끌어가야 하는 장편 소설보다 한 호흡씩 짧게 끊어가는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추천한다.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챕터는 3번째 <여름의 마지막 숨결>이다. 나는 남자중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기에 남자중학교의 생태계가 어떠한지,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어떻게 나뉘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간접적으로나마 남성 작가가 전하는 남자중학교 한복판에 서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좋든 싫든 한 번씩은 꼭 싸워서 서열을 정해야 하는 그 현실에 남자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하지만 결국 쪼그라드는 몸을 보여준 주인공, 그리고 비폭력주의자라던 그 친구.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성애적인 사랑이 아니더라도 동성의 친구로서 그 아이가 하던 모든 것이 멋있어 보여 따라하고만 싶고, 같은 관심사를 가져 한 순간이라도 더 함께 웃고 싶은 벅찬 마음을 안다. 사춘기 시절의 중학생이면 그게 더욱 심한 수준일 것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둘만 있어도 좋았을 그 시절은 결국 그 친구의 비폭력주의 선언이 깨짐과 동시에 땅에 파묻히고 만다.
그들의 사랑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딱딱한 갈색 흙을 파서 그 안에 꼭꼭 숨기는 것이다. 같이 수영을 하던, 같이 음악을 듣던 그 순간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고 덤덤히 살아가는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흐른 지금, 나에게도 그런 상대가 있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사랑 같은 우정이 존재했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순간으로 평생을 살아가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