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초라도 지나면 과거가 되어 버리는 세계. 우리는 이러한 세계에 살고 있다. 미래를 보라는 둥 과거에 사무치지 말자는 온갖 문장으로 동기를 부여해 주는 현재 미디어 속에서 이 시집은 잠시나마 과거에 잠겨 꿈을 꾸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2008년 계간 실천문학을 통해 작가 생활을 시작한 박준 시인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통해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3년 제31회 신동엽문학상을 시작으로 이외에도 3개의 수상들이 그의 행보를 나타내고 있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우리 삶에 위치한 자랑은 어째서인지 슬픔과의 거리와는 멀다고 느껴진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을 자랑하곤 했던 그때 그 시절의 시인과 우리를 투영한다.
슬픔의 눈물은 누군가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고 있는 유형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시인은 타인의 아픔 역시 공감하며 혼자 아파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로한다. 갈수록 삭막해지고 예전과 같은 정(情)이 줄어든 이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시인의 문장. 차마 헤아릴 수 없는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눈물로 침몰했던 여러 척의 배들이 떠오른다. 작가는 이 문장을 통해 마음 속 깊은 곳에서의 상처와 고통을 그려낸다.
사람의 이름으로 지어지지 못하는 글자들을 내가 오래 생각해보는 길
좁고 긴 골목의 끝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다 지새워지는 길
다 헐어버린 내 입속처럼 당신이 자주 넘어져 있는 길
길을 주제로 한 문장 속 하루를 읽다 보면 독자 역시 지나쳐온 과거의 길을 뒤돌아보게 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얼마나 수없이도 불렀길래 다 헐어버렸을까. 시간이 수없이 지났음에도 결국 혀끝에서 다시 넘어지는 그 이름은 예나 지금이나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인은 대과거와 과거의 구분 없이 입안에서 맴도는 이름들을 나열하게 한다.
시집의 종점으로 점차 달릴 때면 문득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당신은 누군가의 이름을 잘도 마음에 들어 하는가? 종이 한 장 한 장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위로의 울림이 당신의 아픈 과거를 이루어 만질 것이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