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쓰기

>>
서평쓰기
>
결국에는 다 당신
저자/역자
박준
출판사명
문학동네
출판년도
2017-06-30
독서시작일
2024년 11월 10일
독서종료일
2024년 11월 17일
서평작성자
손*경

서평내용

이 시는 문득 당신이 생각날 때, 당신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보았던 것, 당신과 함께 했던 추억, 당신을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 ‘일기’ 같으면서도 ‘자서전’ 같기도 한 이 글들은 사람의 아픈 부분을 툭툭 건드리고 찌른다. 일상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소재들을 활용해 익숙함이 느껴졌다. “이 물건을 보면 당신이 생각나요”, “이 장소에 가면 당신이 생각나요” 결국엔 다 당신이다. 그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리워하는 대상 하나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세상에 없고 만날 수 없는 당신을 그리워하는 대상을 누구라고 실명을 쓰지 않고 꼭 사람만이 아닌 강도 있고, 산도 있고, 어떤 현상도 있는 것이다. 참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없으니까 아쉽다, 그립다, 보고 싶다, 슬프다 이 말을 할 때 작가는 발화를 한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며칠을 먹었다” 이때에 ‘당신’도 ‘약을 지어 먹다’, ‘밥을 지어 먹다’라는 말을 쓴다. 어떤 존재가, 좋은 존재가 주변 사람들 혹은 나에게까지 약처럼, 밥처럼 한철을 살게 해준다는 이런 마음으로 지어진 제목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지는 해를 따라서 돌아가던 중에는 그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

P.26 <용산 가는 길>

시인의 마음도 서서히 어두워지고, 끝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라는 문장은, 이 시의 핵심적 메시지이자,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겪는 감정을 잘 보여준다. ‘그대도’라고 표현한 것은, 나에게서 떠나가는 것이 비단 그대뿐만이 아니라 저기에 떠있는 해도 결국 지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필연적으로 떠나갈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있는 과정을 드러낸다. 시인은 이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고 ‘그대’와 ‘나’ 서로에게 주고받는 영향으로 인해 한 시점에서 동시에 떠나는 것이 느껴진다. 이 떠남이 단순히 한쪽의 잘못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흐름, 그리고 서로의 길을 가게 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이제 더 이상 ‘그대’를 원망하거나 그리워하지 않고 어쩔 수 없었던 일임이라고 이해한다.

사랑은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깊어지지만, 그 아픔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순간, 관계는 서서히 균열이 생긴다. 시인은 그 아픔을 혼자서 다 짊어져야 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움과 미련이 남지만, 결국 그 아픔은 혼자서만 겪어야 하는 고독한 길을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시는 이별이나 감정적 단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버릴 생각만 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술이 깬다 그래도 당신은 나를 버리지 못한다 술이 깨고 나서 처음 바라본 당신의 얼굴이 온통 내 세상 같다

P.116 <당신이라는 세상>

당신이라는 세상에서 당신에게 버림받았지만 나는 당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버림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성찰하는 시간을 만든다. 이 시는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감정이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사랑과 삶의 성장, 책임감 있는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놀이를 놀이이게 하고 겨울을 겨울이게 하는 놀이터에 봄이 와도 너는 오지 않았으니 나는 풀어놓은 아픈 말들을 한데 몰아 노트에 적는 놀이를 시작했다 흙이 흙을 낳고 말이 새 말을 하는 놀이, 그 말을 자작나무 껍질에 옮겨 적지 않아도 되는 놀이, 흙에 종이를 묻는 놀이

P.72 <천마총 놀이터>

실연의 아픔을 고독하게 기다리면서 그리워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놀이터는 자기 치유의 장소이고, 상실과 아픔을 전환하며 감정의 치유를 이끌어낸다. 흙과 말을 통해 시인은 감정을 자연의 일부로 내어놓고, 그 안에서 자기 인식의 과정을 겪는다.

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나에게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린 경험이 있다. 그 기다리는 시간에는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놀이터에서 아이같이 노는 것처럼 마음이 부풀고 온갖 기대로 가득 찼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는 상처와 허무함, 아픔으로 남았었다. 그 기다림 속에서라도 오락가락하는 마음, 누군가를 기다리고 좋아하는 감정을 즐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시를 며칠은 먹었다. 곱씹으며 먹어보니 다양한 경험이 떠올라 힘들었다. 과거를 돌아보며 먹은 걸 삼키고 싶은 문장보다 뱉고 싶은 글이 많았다. 나도 과거를 후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역시 시는 공감이 중요하다. 시와 함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았다.

제목부터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인걸 보면 이 제목처럼 시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신선하며 섬세하다. 너무 섬세한 나머지, 읽고 또 읽으며 해석하려고 하면 더 모르겠고 단순하게 볼수록 더 잘 보이는 글이 많았다. 그래서 내 경험을 투영하며 편안하게 읽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스며든 모든 것이 우리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과 모든 독자가 개인적인 감정선에서 큰 공감을 느낄 수 있어 자신의 감정을 깊이 탐구하고 싶은 독자에게 이 시집을 매우 추천한다.

전체 메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