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다. 들쑥날쑥 하는 계절의 변덕처럼, 얼마 전까지 노트북을 두드리던 이들이 어느새 책 한 권씩은 끼고 카페에 등장한다. 그중엔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골라온 듯한 책도 있고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한강 작가의 소설도 더러 존재한다. 그러나 유독 시집은 보이지 않는다. 남들 모르게 들고 와선 야금야금 읽다가 사라지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소설, 자기계발서, 에세이보다 시집의 비중이 적은 보편적인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분명 십 년 넘게 배운 문학이란 교과에선 시가 많았는데, 어느새 우리의 삶으로부터 멀어진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박 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통해 조금은 다시 시와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시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혹자는 인간이 처음 소리를 낼 수 있었을 때부터 우리와 함께했다고 한다. 초기 시의 형태는 신에게 자신들의 안전과 번영을 바라는 의식에 사용되는 노래였다. 모두에게 공평한 동시에 가혹한 자연의 절대성 앞에서 인간은 초조하다. 내일 당장 먹을 게 있기를 바라는 조상의 욕구엔 내일 하루를 더 잘 살았으면 하는, 하루만이라도 더 살아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다. 어느 순간 함께 모여 그렸던 알타미라의 동굴벽화를 보면 이러한 생존에의 갈망이 담겨있을 것이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겠다는 기록의 욕망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다. 오히려 더 짙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반듯해 보이는 우리의 일상 속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자 하는 외침의 시간이 여전히 존재한다. 바짝 정신을 붙잡지 않으면 도태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희석되는 느낌은 무엇보다 두려울 테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는 이런 희석됨에 저항코자 외치는 한 시인의 의지를 볼 수 있다.
언뜻 사소해 보이는 순간이 누군가에겐 고함을 치고 싶은 순간이다. 박 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담긴 시들은 한 시인의 간절한 목소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의 목소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집합체인 것은 아니다. 남들에게 예쁘게, 혹은 합리적인 사고처럼 보이기 위해 쓰인 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길거리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어린아이의 울음을 멈추는 일이 어려운 것과 같다. 다 아니까 이제 울음을 멈추라는 어른들은 사실 그 아이가 겪었던 일들을 이해했을 뿐 어린아이에게 공감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고통을 아는 것은 본인뿐이다. 동시에 그것을 온전히 드러내는 존재 또한 본인밖에 없다. 타인의 입을 통해 본인을 말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일부를 도려내야만 한다. 결국 어린아이의 눈물은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흐르고서야 멈춘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中
저자가 흘리는 눈물을 그저 바라보길 권한다. 시인의 눈물, 고통, 행복을 자기 손에 넣겠다는 폭력은 무례하다. 이해하려 용을 쓸수록 시인이 흘린 눈물의 의미에서는 도리어 멀어질지도 모른다. 한 편을 읽을 때면 한 행, 단어 하나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침묵하는 것이 좋다. 시인이 한 편의 눈물을 모두 흘릴 때까지 기다리고 끝났다면 말없이 안아줘야 한다. 동시에 나도 안김 받아야 한다. 처음엔 낯설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의 품에 안겨서 한편 한편의 시를 곱씹다 보면 이해하지 못해 초조했던 마음 또한 사그라질 것이다.
세상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우리는 무엇이 정답인지 모를 때 무엇보다 정답을 바란다. 위로의 방식 또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좋단 경향도 짙다. 이런 세상에서 시는 전혀 쓸모가 없어 보인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블록에서도 시집의 비중은 높지 않다. 그러나 시의 무가치성은 오히려 그것을 가치있게 만드는 정체성이다. 쉴 틈 없이 물질적 이득을 추구하고 효율성을 강조하며 빠르게 달려가는 현대 사회에서 시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잠깐이나마 시간을 내어 서점에 갈 일이 생긴다면 박 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펼쳐보자. 무심코 펼친 한 페이지에서 뜻하지 않게 서로 안아줄지도 모른다. 첫 만남에 서로 껴안고 싶은 글을 만난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