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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평생 음미하고자
저자/역자
박준
출판사명
문학동네
출판년도
2017-06-30
독서시작일
2024년 09월 12일
독서종료일
2024년 09월 20일
서평작성자
장*열

서평내용

관계 인연 그리고 서로와 유대 따위의 단어들의 결말은 결국 고독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고독을 버티게 하는 건 과거의 서로와 인연, 관계로 불리우던 우리의 모습이리라. “‘다시 와, 가기만 하고 안오면 안돼’라고 말하던 여자의 질긴 음성은 늘 내 곁에 내근하는 것이어서 나는 낯선 방들에서도 금세 잠드는 버릇이 있고 매번 같은 꿈을 꿀 수도 있었다.” 저자는 과거 속 누군가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음성을 내근하며 같은 꿈을 펼친다고 한다. 이처럼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면 저자는 현재를 주체로 살아가기 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연료 삼아 현재를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기억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닌. 어쩌면 지금까지도 사랑하는 많은 것들이리라.
현재의 고독과 과거의 우리. 과연 이 책의 저자가 이상(理想)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때의 우리는 행복했다. 유서도 못쓰고 아플 때에도 저자의 유언을 받아적기라도 한 듯 피곤해하며,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기만해도 그렇게 좋았고, 좋지 않은 세상에서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떠올라 좋기도 했다. 이처럼 현재의 고독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과거의 기억 속 우리. 그 ‘우리’는 비단 두 사람의 사랑으로 한정되는 것만 아니라 가족과 동네 같은 과거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이제 과거로 변하여버린 ‘우리’에 대한 애달픔과 그리움, 애틋함이 글자 속에 지독하게 서려있다. 함께 였던 우리는 과거의 뒤안길로 저물어버렸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것이 현재의 고독을 버티게 해준다. 그렇기에 그는 그 모든 것에다가 이름을 지어 며칠을 먹고 싶었고 씹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 저자가 글을 쓰고자 했던 이유이다. 이름을 지어 며칠을 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지나버린 시간을 더욱 음미하고 내음하고자 활자로 흔적을 남긴, 더 이상 당신의 ‘우리’를 일장춘몽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그런.

 

간만에 읽은 시집이었다. 개인적으로 시집을 읽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 이유는 대부분 글이 현학적이라는 데에 있다. 저자가 자신의 의도를 독자로 하여금 알아채기 힘들게 하는 숨바꼭질처럼. 이 책도 큰 차이는 없었다. 읽으면서 갸우뚱했던 문장과 내용들이 더러 있었고, 심지어 해석하려고 하면 더욱 미궁으로 빠지는 글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보았으면 한다. 현재의 고독을 과거의 우리로 이겨내는 과정 속 발생한 우울함을 독자에게 전염시키지 않으면서, 감미롭게 내용을 풀어내었고, 활자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빳빳한 촉감과 냄새,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향토적인 느낌, 이 모든 것이 이 책을 읽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아서.
좋은 기회를 접하여 좋은 작가와 책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충분할 때, 이 시집의 글자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처럼 다시 한 번 음미해봐야지. 그래, 이제야 알겠다. 그는 결국 과거의 우리를 이상(理想)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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