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보다 다정이 더 많다. 김연수 작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에 실린 단편 소설들은 너무나 많은 우리의 여름보다 주변에서 있을 법한 평범한 소시민의 수많은 다정과 추억을 이야기한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이라는 책은 여름 끄트머리에 닿는 뜨뜻미지근한 사람의 온기와도 같은 단편 소설 20편이 수록된 소설집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일생이 된다. (……) 그들이 낮 동안 열심히 일해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밤의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내게 하는 것. 나는 그들이 모여서 듣는 내 이야기도 그런 것이 됐으면 싶었다.
작가의 말에서 소개한 것처럼, 작가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신중히 해 우리에게 선보인다. 다양한 사람이 화자가 되어 옴니버스식으로 소설이 구성되어 있으며, 수록된 단편 「첫여름」과 「그사이에」처럼 유기적으로 화자가 연결된 것 같은 소재의 글이 있으나, 20편의 단편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구성된 글이다. 화자는 여성이기도, 남성이기도, 때로는 어리거나 젊기도, 아무런 정보도 없이 ‘나’와 ‘너’로만 설명되기도 한다. 그 다양한 시각과 이야기가 이질적인 느낌 없이 매끄럽게 우리에게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라면 소설과 수필의 모호한 교집합으로 이뤄진 글이란 점이었다. 소설이라기엔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만 같았으며, 수필이라기엔 이 이야기 또한 ‘픽션’이란 점에서 그 경계가 흐리단 점은 명백했다. 남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유사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추억을 상기하고, 소설 속의 인물이 겪은 이야기를 우리 또한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여름의 마지막 숨결」에 나오는〈summer of‘ 69〉를 함께 들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한 것과 달리 이 소설을 읽으며 감정적인 공감이나 유대를 쉽사리 찾기란 어려웠다. 모두가 공감각적으로 유대하고 추억을 불러일으켜 글에 집중시키는 것보다, 우리의 감성을 자극해 붕 뜨는 감각을 만들어주는 소설이란 생각에 쉽사리 깊이 빠져들 수 없었다. 한 명의 독자로서 이 글을 읽는 과정에서 단편의 주제가 두루뭉술하고,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추측이 어려웠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 주제가 억지로 얼기설기 짜깁기된 기분이었다.
각자가 현혹되고 매료되는 소설이라 지칭하는 건 다양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흡입력이 높다거나, 표현이 수려하다거나, 표현이 담백하고 사실적인 것 등 내용 외적인 작가의 구성이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이 책은 표현이 담백하고 섬세하여 독자로서 읽기는 쉬웠으나, 나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두루뭉술한 탓에 끝까지 읽으며 몇 번이고 책을 덮게 했다. 닫힌 결말과 확실히 주제가 드러나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책을 읽고 나와 유사한 감상을 내놓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작가의 문장은 화려한 서술이나 꾸밈이 들어간 화려체가 아닌 짧고 담백하며, 간결한 문체로 이루어진다. 그 덕에 흐름이 매끄럽고 이야기의 구성이 풍부하다. 그러나 짧은 소설의 구성이 풍부하단 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시작과 끝의 주제가 이어지지 않고 붕 뜬 느낌을 받았다. 완성된 두 글의 처음과 끝을 잘라 붙여 얼기설기 엮어 이어 붙인 소설이 에세이처럼 교시적인 내용으로 마무리 짓는 문장들이 보여 ‘그래서 무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가?’란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한 처사인 것만 같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두루뭉술하나,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이 우리의 감성을 어루만지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막연히 꿈꿔온 것들, 해보고 싶었던 이상과 소망, 감성에 젖어 추억을 회상하고, 기억을 더듬어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주변인에 대한 과거를 톺아보는 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추억에 젖어 감정을 되짚는 행위는 하지 못할지라도 나의 마음에 담긴 오랜 감성과 소망들을 일깨우는 데엔 좋은 영향을 준다. 일상에 지친 독자가 다시금 낭만과 다정이란 이름의 감성을 되찾고 싶을 때, 나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