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공상 과학 소설, 즉 SF에 대하여 말하면 우주에서 온 로봇에게 참혹하고 끔찍하게 말살 당하는 인간과 지구 그리고 그것을 구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를 많이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도 SF는 우리에게 어두운 긴장감과 딱딱한 감정을 선사해주고는 한다. 하지만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다르다. 우리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껏 SF가 다루어주지 않았던 인간이 아닌 것들의 이야기. 왜 우리는 인간이 아닌 것들의 슬픔을 헤아려주지 못했는가.
지구로 떠난 일부 순례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파헤치러 직접 지구로 나아가는 올리브의 이야기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강에 실어 보낸 루이와 새로 돌아오는 루이, 그렇게 다섯 번째 루이를 만남에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있을 곳으로 나아가는 희진의 이야기 <스펙트럼>, 태어나기 전 그들이 살았던 행성을 떠올리며 눈물 지으면서도 그림으로 이름을 떨치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류드밀라의 이야기 <공생 가설>, 다른 행성으로 떠난 가족을 몇백 년 동안 기다리다 만나지 못할지라도 무너져가는 셔틀을 타고 우주로 나아가는 안나의 이야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울의 돌멩이가 어떻게 사람의 물성을 사로잡는가 고민하며 나아가는 정하의 이야기 <감정의 물성>, 이제는 데이터로서 존재하는 엄마의 사랑을 이해하고 과거로부터 나아가는 지민의 이야기 <관내분실>, 왜 그녀가 심해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는지 그 너머 우주선으로 뛰어들어 나아가는 가윤의 이야기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어쩌면 우리는 시간 속에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올리브가 릴리를 만난 것처럼, 안나가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것처럼, 우리가 태어나기 전 류드밀라의 행성에서 살았던 것처럼.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인간만의 일이 아니다. 김초엽의 소설은 인간 같지만 결국 인간이 아닌 많은 것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의 단편 소설들은 어지럽게 뒤섞여 있지만, 그 속에 언제나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뒤로 나아갈 수 없다는 후회와 그리움에 밤새, 몇 년, 어쩌면 몇백 년을 뒤척인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단편 소설은 장편 소설에서 얻을 수 없는 짧고 굵은 몰입을 준다. 길지 않은 글에 한 명의 생을 모두 담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책을 끝까지 읽은 후에는 한 명이 아닌 열 명이 넘는 생을 받아들일 수 있다. 김초엽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은 이미 이야기 속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교에서 주최한 김초엽 작가의 북 콘서트를 듣고 온 후 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마음 안에 단단히 지니게 된 달고 쓴 교훈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허상일 뿐인 과학 소설일지도 모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사람이 느껴야 할 다양한 감정과 태도가 담긴 이상적인 소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