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여쪽의 책에서 열두개 문단 정도가 캡처 편집되어 써브컬처 게시만에 올라가자 아직 책을 접하지 않은 이들은 그 편협함과 낡은 세계관에 경악했고, 이미 책을 읽은 이들은 스스로 둔감했음을 한탄했다.
P씨의 위상이 하락하기 시작했던 건 SNS 대중들의 이중성이 큰 몫을 했다. P씨가 소설의 분위기나 흐름을 위해 설정한 인물들의 상황이나 행동, 특징 등을 짜깁기하여 SNS 상에 퍼트려 큰 파장을 일으킨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질 때에도 P씨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들은 이 짜깁기 편집본만을 보고 P씨를 평가질하게 되는 것이다. P씨 나름대로의 스토리보드, 구성 등이 있었고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사용했을 인물들을 앞 뒤 따져보지 않고 비난부터 하던, SNS 대중들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대목이 눈에 많이 띄었다.
비난을 비판처럼 여긴 것 같다. 비판을 가장한 비난. 나는 이 소설 안에서의 SNS 대중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비난과 비판의 차이를 인지했으면 한다. 비난은 상대방의 행동, 태도, 성격 등에 대하여 규범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비판은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비슷한 말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비판에는 객관이 들어가고 얼핏 보면 차갑게 느껴질 수 있어서 여러 사람들이 비난과 비슷하다고 착각하지만, 실상 그 두 단어는 다른 뜻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수많은 타래에 멘션을 직접 섞지는 않았으며 약간 흥미를 갖고 지켜보는 정도였다. (중략) 참전이 아닌 관전. 나는 철저한 관중으로서의 권리와 여흥을 누렸다.
SNS 대중은 세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비난을 하는 사람, 비판을 하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떠한 행위 없이 관전만 하는 사람. 나 또한 SNS에 직접적으로 비난과 비판을 하지 않는다. 내 또래 친구들과 사적으로 이야기 할 때, 그럴 때 나의 생각을 얘기하는 편이지, 모르는 대중들이 볼 수 있는 오픈 된 공간에서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SNS의 공개적인 댓글에 비난 또는 비판 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들을 또 다시 비난 또는 비판하는 대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난무한데, 우리는 이를 보면서 욕 먹기 싫어서 또는 내 의견을 무시 받기 싫어서 아무런 비판, 행동 없이 가만히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좋은 말로 ‘중립기어’라고도 한다. 아직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보지 못한 채 비판을 해서 나중의 결과에 자신 비판,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니 차라리 아무 것도 안하고 지켜만 보겠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단어라고 볼 수 있겠다.
결국 맹비난을 받은 P씨는 이도 저도 아닌 작가가 된다. 여기서도 SNS 대중의 이중성이 보였던 것은 SNS 대중들의 비난(고정관념, 직업비하, 폄하)으로 다시 대중들의 입맛에 맞게 출간 된 소설은 의아하게도 예전처럼 냉소 속의 폭소, 고소 속의 미소 등이 없다며 또 비난 받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예전에 자신들이 했던 비난을 잊고 그러는 것일까. 단지 마녀사냥을 즐기는 것일까 무서워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