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3학년 시절, 용돈기입장을 썼던 기억이 난다. 문방구에서 샀었고, 돈을 어디에 썼는지에 대한 비용을 기입하는 란, 그리고 돈이 들어온 출처를 기입하는 란 이렇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뒤돌아보니, 이것은 단식부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용과 출처를 적지만, 대응시켜서 기록하지 않는다. 시간순서적으로 기록하지만, 내일 미술시간에 필요한 스케치북을 사기위해 언제, 어디서 들어온 돈을 지출했는지 대응기록하지 않는다. 저번 추석에 받은 돈 1,000원과 그저께 삼촌이 준 1,000원을 잘 나누어 생각하고 있지만, 기록하지 않는다. 이것이 단식부기다. 하지만 노트에 줄을 한 개 죽 긋고, 왼쪽에 '스케치북 1,000원', 오른쪽에 '추석용돈 1,000원'으로 기입하면 비용에 대한 출처를 알 수 있다. 이것이 복식부기이다. '부기한다'라고도 말한다.
나는 최근에 가계부를 쓰고 있다. 하지만 시중에 있는 가계부와는 다르게, 차변/대변을 구분하여 '복식부기'하고 있다. 회계장부를 나만 본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숨기고 싶은 지출이 있다면 그리고 숨기고 싶은 돈의 출처가 있다면 자신의 양심에 도전을 받게된다.
17, 18세기의 유럽의 전제군주들도 회계장부를 정확히 기록하는 것을 피했다. 이탈리아 피렌체가 상업, 무역도시로 발달하면서 복식부기도 발달하였는데 이를 국가운영에도 받아들이고는,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숨기고 싶은 지출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싶었던 루이 16세는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단두대에서 처형됬다. 지출의 제약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 목숨에 제약이 생기기는 커녕, 제약받을 목숨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인생에 주어지는 약간의 제약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반하지 않는 한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라 생각한다.
서양의 이탈리아에서 복식부기가 발전한 역사가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다. 특히, 무역행위를 하며 문화도 이곳저곳으로 전파가 되는데 이탈리아 피렌체의 회계사들이 아라비아 숫자를 도입했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그전까지만해도 아라비아숫자로 숫자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예로 들어, 1,210,000원을 십진법으로 'MCCX'이고 그나마 봐줄만 하지만, 애플아이폰 XS Max256GB의 최저가 844,700원 짜리를 로마사람에게서 사려면 DCCCXLMVDCC원을 줘야한다. 머리가 좋아지면 좋아지겠지만, 그만큼 머리아픈 표기방법에서 간편한 아라비아숫자의 사용은 회계학을 더 꽃피웟다고 한다. 그리고 재밌는 사실은 포켓 회계장부가 부의 상징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기록을 위해 종이가 아닌 양피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구하는데 비용이 엄청났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의 부를 언제어디서든지 관리하고 과시까지 하면 정말 뿌듯한 기분일 것 같다. 회계가 머리아픈 과목인 줄 알았지만,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쓰인 적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만약 나의 1학년 때, '회계원리' 과목이 사실은 '회계원리와 그 과시'라는 과목이고 교재도 양피질로 만들어졌다면, 이 책에 나오는 귀족들처럼 포켓회계장부는 아니더라도 나도 커다란 회계원리책을 손으로 들고다니며 사람들에게 과시하면서 기어코 A+을 받아내려고 하지 않았을까?라는 재밌는 상상도 해본다.
서쪽 동네의 피렌체가 이랬었던 반면, 한반도에서는 그 200년 전 고려시대때부터 이미 현대의 복식부기와 거의 똑같이, 다름이 없는 방법으로 회계장부를 기록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책 끝에는 우리나라의 회계의 역사를 부록으로 수록하고 있다. 개성상인의 회계방법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전래의 고유한 치부법인 사개치부법을 최초로 해설한, 1916년에 발간된 책 <사개송도치부법>에 잘 정리가 되어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 장부를 '이두'문자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옛 이두에 따르면, '사실과 다른 것을 기록하는 행위'를 뜻하는 반작(反作)을 '번질'로 읽는다고 한다. 여기서 질은 사람을 뜻한다. 회계에 왜 사람이 나오는지 묻는다면, 이는 돈의 흐름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사람으로 인격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복식부기의 차변서두에 per, 대변서두에 a를 단 것도 인격화를 위함에 있었다고 한다. 동양과 서양의 생각의 방향이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인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가며 상업멸시의 분위기 때문에 회계가 쇠퇴했을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정부회계는 오히려 굉장한 수준급으로 발달하였다고 한다. 앞의 이두단어 표현을 빌려 소위 '반작'을 마음먹으면 할 수 있었겠지만, 조선이 500년이상 유지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어느정도 투명하게 굴러갔거나, 정말 치밀한 '반작'을 할만큼 똑똑한것이었는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책을 읽고는, 회계사는 정말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고, 그중 몇몇이 달콤한 유혹을 제안한다면, 회계사는 선택의 기로에서 앞으로의 길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모든 직업군에서도 이러한 선택의 시간은 찾아오겠지만, 그 선택을 함으로써 과연 인생의 의미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떤 보람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 확실한 심지를 굳히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도 위험한 선택에 고뇌하고 야근을 밥먹듯이하는 회계사들의 의식높고 용기있는 선택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