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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00 a음악 혐오 /d파스칼 키냐르 지음 ;e김유진 옮김
260 a서울 :b프란츠,c2017
300 a298 p. ;c20 cm
500 00 a원저자명: Pascal Quignard(파스칼 키냐르)
507 tHaine de la musique
700 aQuignard, Pascal,e지음
700 a김유진,e옮김
950 0 b\17800
음악 혐오
종류
단행본 국내서
서명
음악 혐오
저자명
발행사항
서울 : 프란츠 2017
형태사항
298 p ; 20 cm
주기사항
원저자명: Pascal Quignard(파스칼 키냐르)

소장정보

청구기호 : 670.1 키193음
도서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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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청구기호 별치기호 소장위치 대출상태 반납예정일 서비스
등록번호
E1134860
청구기호
670.1 키193음 =3
별치기호
소장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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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상태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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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329975
청구기호
670.1 키193음
별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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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자료실(한림도서관5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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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329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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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1 키193음 =2
별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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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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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아인 서평

Quignard, Pascal,
이재민
2020-08-13
“그뭔씹?”이라는 인터넷 용어를 아는가? “그게 뭔데 씹덕아?”의 줄임말로 상대방이 펼쳐내는 정보를 듣는이가 생전 처음 들어서 이해하지 못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분명히 오덕후다. 다만 서브컬처가 아닌 철학, 역사, 신화, 예술 등에서 말이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이름들과 철학들 그리고 로마어와 희랍어의 어원들. 한 페이지에 최소한 하나씩 있는 각주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뭔씹?” 어렵다. 적어도 나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책이었다. 서점에서 분명 소설로 분류되지만 깊은 철학적 사색이 담긴 철학적 에세이에 더 가깝다. 앞서서 말한 것들도 그 원인이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이해하기 어려운 은유법과 중의법들의 사용도 큰 역할을 차지한다고 느꼈다. 이 책은 음악 그 자체의 시원과 본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저자의 생각을 전개해 나간다. 음악의 근원은 죽음이다. 최초의 활은 동물의 사체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죽음으로써 만들어진 또 다른 죽음을 위한 도구. 그의 짝인 화살. 죽음을 통해 날아간 죽음은 바람을 가르며 또 다른 죽음을 만들어낸다. 슉! 휙! 탁! 이것은 음악이다. 최초의 악기, 최초의 음악은 고통, 공포, 두려움, 죽음과 함께한다. 이것을 확장하면 음악은 타인 혹은 동물들의 복종을 위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위협하고 복종시키는 무언가를 감각을 통해 지각하고 회피한다. 시각적 공포는 차단할 수 있다. 눈꺼풀로써, 커튼으로써 혹은 물리적 공간을 차단함으로써. 하지만 듣는 것은 보는 것과 다르다. 소리는 살갗이라는 것을 모르고,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 내에선 공간적 한계도 모른다. 회피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 그것은 소리이고 음악이다. 책의 후반부로 향해 달릴수록 저자가 왜 ‘음악혐오’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가 된다. 유럽의 낭만주의 음악과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전쟁들. 음악의 복종이라는 특성을 이용해서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들은 정신적으로 고문한 그 폭력성. 음악의 본성을 이기적으로 이용한 인간의 탐욕. 이 모든 것들이 그가 음악을 혐오하게 된 이유이다. 하지만 필자는 저자의 생각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이라는 개념과 연결해보고 싶다. 무분별한 복종, 폭력 그리고 탐욕은 당연히 비판되어야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것들이 없인 살 수 없다.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상습자의 명령에 대해 복종해야할 부분은 당연히 존재하고 생존을 위해선 최소한의 폭력, 번영을 위해선 최소한의 탐욕도 필요로 한다. 필자는 김윤아의 노래를 좋아한다. 짙은 우울의 어둠 속에서 핀 보라색 꽃 한 송이와 같은 그녀의 솔로 앨범을 들으면 그녀가 설계한 감정에 복종된다. 그리고 때론 메탈 음악을 듣기도 한다. 채찍이 말을 때려서 달리게 하듯이, 메탈이라는 채찍은 나를 때려 달리게 하고 정신 차리게 해준다. 음악의 강요된, 제약이 없는 복종과 폭력은 문제가 된다. 하지만 짧게는 3분, 길게는 1시간 정도 되는 음악의 복종과 폭력은 잠시 피곤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곤 한다. 나는 이러한 측면에서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라는 책의 제목을 <음악 애증>으로 수정하고 싶다. 애증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랑과 미움이라는 것이야 말로 음악을 표현하는 좋은 단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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