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사항
죽간(竹簡)에 기재된 수호지진간(睡虎地秦簡)은 기원전 3세기 진나라의 법률자료로서의 가치만이 아니라 중국 고대 기록물의 생산과 유통의 측면에서도 남다른 의의를 지닌다. 진시황의 전국 통일은 단순히 정치 · 군사적 통합의 결과만이 아니었다. ‘진(秦)’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하나의 체제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각종 정치제도와 이념의 통일,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줄 표준화된 문서행정과 정보의 유통 매체가 필요하였는데, 수호지진간은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또한 수호지진간은 진제국이 동질적 언어공동체로 결속되어 나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게도 한다. 소전(小篆)과 진예(秦隸)를 중심으로 한 진제국의 통일적 문자정책과 이를 표현한 간독은 문서행정에 기초한 진제국 유지의 근간이었던 바,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가 바로 수호지진간과 최근 발굴된 이야진간(里耶秦簡) 등의 간독자료이다. 수호지진간은 1975년 12월 호북성(湖北省) 운몽현(雲夢縣) 수호지(睡虎地)의 11호 진묘(秦墓)에서 발굴된 1,150여 개에 달하는 죽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굴과 더불어 이들 죽간에 대한 정리와 석문의 작성 및 출판은 다른 어떠한 자료보다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 이유는『사기(史記)』 의 「진본기(秦本紀)」와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이외에는 그다지 볼만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수호지진간이 진국사(秦國史) 연구의 큰 공백을 매울 수 있는, 그야말로 중국고대사 연구의 한 획을 긋는 자료적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수호지진간은 전국 및 통일제국시기 진나라의 역사는 물론 중국고대사 전체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하여도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법제사의 측면에서 볼 때, 수호지진간 중의 법률자료는 중국고대 법제의 형성과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는 물론 동아시아 법체계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