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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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00 a필경사 바틀비 /d허먼 멜빌 지음;e김세미 옮김
260 a서울 :b바다,c2012
300 a92 p. ;c21 cm
440 a바벨의 도서관 =x(La) biblioteca di Babele ;v27
440 a보르헤스 세계문학 컬렉션
500 iBartleby, el escribiente
500 a이 책은 스페인어판의 중역임
500 a기획|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500 a옮긴이(해제, 작가 소개): 이승수
500 a원저자명:Melville, Herman
700 aMelville, Herman,d1819-1891
700 aBorges, Jorge Luis,d1899-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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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a이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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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 aBiblioteca de Babel
949 aBorges 세계문학 collection
950 0 b\9000
필경사 바틀비
종류
단행본 국내서
서명
필경사 바틀비
발행사항
서울 : 바다 2012
형태사항
92 p ; 21 cm
주기사항
이 책은 스페인어판의 중역임 / 기획|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옮긴이(해제, 작가 소개): 이승수 / 원저자명:Melville, Herman

소장정보

청구기호 : 808 바22바
도서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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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청구기호 별치기호 소장위치 대출상태 반납예정일 서비스
등록번호
E1251594
청구기호
808 바22바 v.27,
별치기호
소장위치
제1자료실(한림도서관4층)
대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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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대출

책소개

동아인 서평

허먼 멜빌
황예성
2022-12-22
이 책에 먼저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변호사는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이자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소설 중 고용주로서 바틀비 외에도 2명의 필경사와 1명의 사환을 두고 일하고 있다. 첫 부분에 이 사람이 자신을 신념을 이야기하는데 삶은 가장 쉽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뿌리 깊은 신념으로 가득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즉, 어떤 신념이나 확고한 가치관이 있다기보단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책을 보면 자기 직원들을 터키turket, 니퍼즈Nippers, 진저넛Ginger Nut과 같이 별명을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당시 사회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고용주가 노동자를 장난스럽게 부르며 노동자의 인권을 가볍게 생각하는 문화대로 이들을 대했다. 이런 변호사에게 바틀비가 등장한다. 바틀비는 처음 얘기했듯 너무나 독특한 인간이었다. 책에는 창백할 정도로 말끔하고, 가련할 정도로 점잖고,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한 모습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또한 필경하는 일 말고는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바틀비는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변호사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 하지만 자기 일을 열심히 근면하게 일을 했다. 성실하지만 다른 일은 하지 않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인다. 이 모습이 맞물려 오히려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실제로 계속해서 바틀비는 계속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살아가려 한다. 바틀비는 생강빵을 항상 주식으로 먹었는데 이 생강빵은 값이 싸고 맵고 자극적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음식을 먹음은 필수불가결한 행위이므로 그만둘 수 없다. 결국 바틀비는 음식 섭취에 반응하지 않기를 택한다. 이렇듯 바틀비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고용주가 주는 압박에서 온전히 자신으로써 살아가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 삶은 쉽지 않았다. 변호사 자신은 당연히 여기는 요구가 계속되었고 사원들과 함께하라는 압박도 들어온다. 그러면서 바틀비는 권리를 침해당하기 직전까지 가게 된다. 그 뒤로 바틀비는 일조차 하고 싶다고 선언한다. 일할수록 바틀비는 깨달았다.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삶이 결국은 불가능함을 말이다. 바틀비가 일하며 많은 일들을 거부했지만 놓지 않았던 일은 자신의 진정한 업무였던 필경이었다. 하지만 일하기를 놓아버리며 자신의 바라고 원하던 삶의 희망 또한 놓아버렸다. 그 뒤로 바틀비는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뒤로 덤덤히 받아들인다. 교도관이 와 끌려가는 순간에 순순히 끌려가는 바틀비를 통해 이미 예견되었던 운명임을 알 수 있다. 바틀비에게는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교도소까지 들어가 먹기를 거부하며 죽음을 택한다. 한 인간이 살아가 보자 했던 방식은 이 시스템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마지막은 너무나 쓸쓸한 죽음이었다. 바틀비는 자신이 배달 불능 우편물과 같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여기서 바틀비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던 삶은 무엇일까. 아마도 바틀비가 키케로 흉상을 쳐다보는 모습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키케로는 고대 그리스사람으로 공화정을 주장했던 사람이었다. 공화정은 자유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모습이었고 이 시대에 미국 또한 그렇게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도래한 세상은 온전한 자유가 있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전에 바틀비는 권력층에 의해 일자리를 잃었다.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부에 의해서 말이다. 바뀌어 가는 시대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미래와는 너무나 달랐었다. 자본가가 세상의 중심이었고 힘이었고 권력이었다. 자유로운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억압과 착취가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바틀비가 진정으로 바라던 건 자본가에 휘둘리는 세상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런데 바틀비는 이상하게 변호사 곁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동정심이 있었고 챙겨주기도 하였고 바틀비 또한 이를 느끼고 있었다. 바틀비의 아픔과 고독을 바라봐 준 건 변호사였고 바틀비를 구원해줄 유일한 길은 변호사였었다. 바틀비를 처음 봤을 때부터 외롭고 고독한 인간임을 알았고 집도 없이 사는 사람임도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들을 외면하게 된다. 변호사는 불행의 모습을 온전히 볼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변호사는 동정과 연민으로 바틀비를 이해하길 그만두게 된다. 그렇게 바틀비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간다.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바틀비라는 인물이 가지는 불편함으로 우리를 외면하게 만든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불편함이 역설적으로 시선을 돌아보게 한다. 어째서 이 인물은 가련하게 혼자서 살아가고 어떤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으며 고독하고 외롭게 살아가야 했는지, 왜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온전히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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