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우리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에서 수혜자가 된 정하얀, 외모지상주의의 피해를 겪고있는 박미인. 서로 대립되어 있는 두 사람을 보여주면서도 그들은 몹시도 닮아있다. 그 이유는 왜일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이 책은 외모지상주의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 담아내고 있다. 자신의 얼굴이 싫어 성형을 외치고 다니는 여자아이를 사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의 작은 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각진 턱이 싫다고 쉽게들 성형을 외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성형을 한다고 해서 내 모습을 바꾼다고 해서 내 자신이 행복해진다고 말하진 않는 다. 겉으로는 아이들에게 칭송받고 주변에서 외모로 칭찬을 받는다고 해도 속에는 이미 여러차례 외모때문에 겪었던 상처들이 곯은 채 내버려져있기 때문이다. 외향을 바꾼다고 해서 달라진 주변의 반응에 잠시 기쁠지라도 결국 그건 자신의 아픔을 겉으로 수정해서 고치려고 하는 것뿐이다. 그 당시에 아팠던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에 이 소설 속 정하얀은 망가져간다. 뒤틀리고 자신의 안에 남은 열등감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도 달라지려고 발버둥 치는 박미인이 미워 모함을 하고 잘못된 소문을 퍼트리고 이내 소리친다. 자신은 너와 달리 예쁘다고. 사실 예쁘다는 게 하나의 가치로써 칭송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 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 다. 예쁜 건 곧 권력이자 자신의 주변을 바꾼다는 인식은 우리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혀 있다. 그래서 상처받고 상처주고 평가하면서 상대를 대하곤 한다. 아름다움이라는 틀에서 자신을 가두어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 나간다.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하니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무시당할 것 같으니까. 결국 그렇게 자신을 바꾸고 나면 진짜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우리는 아름다움이라는 틀에 자신의 가둔게 아닐까? 성형을 하지 않아도 예쁘다는 말보단 이런 모습이여도 괜찮다. 이게 내 모습인데라고 생각을 하게 해야 하지 않을 까. 그래서 이 책에서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나는 그 자체로 예쁘다라고 얘기하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이 모습을 아름답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국 아름다움의 틀에선 벗어나지 않는 말을 하곤 한다. 아름답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 모습이여도 이런 내 모습이라도 괜찮다. 나는 이런 내 모습이 좋으니까. 이렇게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아름답든 아름답지 않든 우리는 우리의 모습 그 자체로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이 말을 이 책을 읽으면서 얘기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