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광장은 경계가 희미해서, 때론 나는 밀실과 광장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내가 ‘광장’을 통해 들여다본, 이명준의 삶은 혼란 그 자체였다. 자신과 맞지 않는 광장에서, 그는 사랑으로 버텼다. 이를 통해, 나를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지, 내 삶에서 우선순위는 어떻게 되는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독자로 하여금, 의미 있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은 일단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행동 변화까지 이어진다면 더욱 좋은 책일 것이다.
1973년판 서문에는 저자가 이명준에게 바치는 글이 쓰여 있다. ‘나의 친구여,… 고이 잠들라.’ 이명준이 실존인물인지 착각이 들어서 다시 조사를 해 볼 정도였다. 저자가 이명준을 책의 주인공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저자는 이명준에게 깊은 뜻을 담았고,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했다고 생각했다. 또한, 저자 최인훈은 함경북도에서 태어났으나 6·25 전쟁 당시 월남했다. 그가 겪은 일과 심정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저자와 이명준의 관계, 작품에 담긴 저자의 뜻을 생각해보았다. 저자는 곧 이명준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저자는 월남을 했기에 완전한 북한 사람도, 남한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광장 속에서 무언의 소외와 차별을 당하던 그가 기댈 곳은 사랑뿐이었으리라. 그리고 북한에서 그는 바다 근처에서 자라면서, 바다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결국 고요해진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명준이 혼란 속에서 결국 선택한 광장이 바다였던 것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이제껏 그가 남·북한을 오가며 어느 곳에도 발붙이지 못하고, 중립국을 향해가던 것에 비하면 바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그래도 저자가 남·북한 사회를 모두 겪어봤기 때문에 당시 배경, 사회는 잘 묘사되었다. 그리고 표현적인 부분에서, 문장이 너무 길게 이어져서 책의 몰입을 방해했다. 또한, 남한을 회상하다가 북한을 회상하는 부분은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서 읽다가 혼란스러웠고 아쉬웠다.
또 한 가지, 이명준의 자살로 마무리된 결말이 아쉽다. 저자의 뜻에 의하면 이명준은 바다라는 광장으로 간 것이지만, 내 생각에 자살은은 이명준의 광장을 무너뜨리고 없애버리는 행위이다. 자살보다 이명준이 새로운 광장을 만드는 내용이었다면 더 의미있는 내용, 좋은 결말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이명준이 빠진 바다는 광장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광장과 밀실은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명준이 죽고 나서는 의미 없는 곳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무언가를 선택하기 힘든 상황일 때,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한다. 이명준처럼 선택 자체를 하지 않는, 버리는 상황은 있을 수가 없다. 저자는 이명준에게서 아예 그 선택권을 빼앗고서 비극적인 결말을 지었다. 선택을 하지 않거나 피하는 경우에는 이처럼 불행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뜻으로 느껴졌다. ‘광장’을 흔히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남북 분단의 비극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한 단계 더 도약해서는 ‘인생에서의 선택’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