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원삼국-삼국시대 영산강 유역 주거지 출토 방추차를 대상으로 직물 생산체계의 특징과 사회경제적 의미를 살펴보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 생산도구인 방추차의 기능성 향상 유무와 표준화 수준에서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생산 및 유통의 통제로 직조를 담당하는 취락 및 가구의 지위 상승이나 부의 축적이 이루어졌는지 등 백제 세력 확장 이전과 이후를 기준으로 영산강 마한 사회의 직물 생산 체계에 어떠한 특징이 나타나는지 검토하였다. 먼저 선행 연구를 참고하여 원삼국-삼국시대 영산강 유역 취락 유적에서 출토된 방추차의 형식을 설정하였다. 방사성탄소연대(14C) 및 공반유물 검토를 통해 시기를 구분한 후 이를 기준으로 시기별 형태 변화 즉 기능성 향상을 살펴보았다. 다음, 기하학적 형태측정법의 정준변량분석(Canonical Variate Analysis, CVA)을 실시하여 권역별 방추차의 표준화 수준이 어떠한지 확인하고 접근성 분석(Buffer analysis)을 통해 유통 범위를 파악하였다. 이를 토대로 직물 생산 주거지의 면적과 취락 규모, 출토 유물을 검토하여 영산강 유역 직물 생산체계의 특징과 의미를 고찰하였다. 1기는 기원전후부터 4세기(2000-1700 BP)에 해당하며 A·B·C 3개 형식의 방추차가 유행하였다. 취락 간 방추차의 형태적 유사도가 낮아 권역별 구분이 가능하며 표준화 수준도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즉 소수의 전문가가 비교적 좁은 집안에서 일상 행위와 생산 활동을 병행하는 ‘가내공작’(Household industry, Van Der Leeuw 1977) 형태의 생산체계가 확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기 직물 생산은 식량 생산을 보완하는 가구 내 경제 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직물 유통은 반경 10㎞ 이내 인근 취락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2기는 5세기부터 6세기(1699-1500 BP)에 해당하며 A·B·C 3개 형식의 방추차가 유행하였다. 영산강 상류권에 밀집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취락 간 방추차의 형태적 유사도와 표준화 수준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관찰된다. ‘가내공작’(Household industry, Van Der Leeuw 1977) 생산체계가 1기에 이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세력 확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종류의 직물이 생산된다거나 직물 생산도구의 기능이 향상되고 표준화가 확립되는 등 생산체계에서 큰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통 범위는 반경 20㎞로 1기에 비해 확장되었는데 영산강 상류권에서 생산된 직물이 영산강 일대 중소형 취락들의 수요를 충족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직물 생산이 대형 취락에 집중되고 생산 주거지의 면적은 더욱 커지면서 일상 토기 이외에 백제 관련 특수토기가 확인된다. 직물을 비롯하여 토기 등 다른 제품의 생산이나 저장이 직물 생산 주거지에 집중되고 생산품의 유통 범위도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1기에 비해 생산자의 부나 위계에 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변화는 영산강 상류권 취락이 직물 생산과 교환의 거점이 되어 지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