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論文通過梳理和掌握十八世紀和十九世紀在韓中地域發生的民亂的發展過程, 以及社會背景, 鎮壓對策, 社會影響, 並以韓國晉州民亂和中國交山民亂和宜興民亂為中心進行探究。為此本文需要對十八, 十九世紀發生的民亂的整體共同點和不同點進行掌控, 對民亂引起的社會變動和勢力變化展開討論。民亂是指, 大体上, 扎根于乡村社会, 在其中从事生产活动或日常生活的人们通过发送通文、举行集会、向首领呼吁民怨等进行起义, 並且有的會發生武裝鬥爭。但在中國多用農民起義, 民變, 意義都是相同的, 在本論文中統一使用民亂以方便使用和理解。19世纪的韩国是封建社会秩序解体、准备向新社会过渡的历史性变革时期。同时, 这是全面体现封建社会矛盾的时期。这种社会矛盾不仅在地主和田户的基本阶级之间, 在贫农和富农、封建国家的农民支配过程以及封建支配阶级内部也表现得尤为突出。封建社会的全面矛盾状况引发了大规模的农民反封建抗争。晋州民乱是1862年全国发生的71起民乱中规模最大, 進行的相對激烈的。特別是這種抗爭扩散到全国的契机就是晉州民亂, 是十分具有代表性的。但是在中國像晉州民亂這樣可以想比較的幾乎沒有, 更何況還要在統一時代的更加難找。所以筆者在整理中國民亂論文時發現, 交山民亂和宜興民亂不僅帶有自己的特點, 同時與晉州民亂規模相同, 也有很多共同點, 所以將中國這兩個民亂一起與晉州民亂相比較進行探討。本论文的目标不仅是民乱本身, 而且更加关注发生民乱的社会变化。可以分析农民抗争所具有的历史发展的推进作用。通过这个过程可以知道封建社会结构是如何向近代社会过渡的。通过民乱研究, 可以具体发现以生产力的发展和商品货币经济的发展为基础的封建社会阶级构成的变化情况。
본 논문은 韓·中 지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민중운동의 발전과정, 사회배경, 진압대책, 영향을 파악하여, 한국의 진주미란과 중국의 교산민란, 의흥민란을 중심으로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한·중 양국에서 수용된 민란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분석하고 민란에 의한 사회변동과 세력 변화를 검토하겠다.민란이란 대체로 향촌사회에 뿌리를 두고 그 속에서 생산 활동이나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가던 사람들이 통문(通文)을 보내고 집회를 갖고 수령에게 민원을 호소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다. 또한 때때로 주민들을 동원하고 조직적으로 무장하는 모습이 볼 수 있다.19세기 한국은 봉건적 사회가 해체되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준비하던 역사적 변혁기였다. 동시에 봉건적 사회모순이 전반적으로 드러난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모순은 지주와 전호라는 기본계급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빈농과 부농, 봉건국가의 농민지배과정, 그리고 봉건지배계급 내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봉건적 사회의 모순 상황은 대규모 농민 반봉건항쟁을 촉발했다. 1862년에 진주민란은 전국적으로 발생한 71건의 민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상대적으로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저항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계기가 진주민란이다. 그래서 진주민란을 대표적인 민란으로 본다. 그런데 중국에서 이런 민란을 비교할 수 있는 민란이 거의 없고, 같은 시기의 민란 비교가 필요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필자가 중국의 민란 사료를 정리할 때 의흥민란과 교산민란은 자체의 특징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진주민란과 규모가 같아 공통점도 있었다. 그래서 중국의 민란들과 진주민란을 비교 및 검토할 수 있었다.본 논문은 민란 그 자체뿐만 아니라 민란이 발생한 사회의 변화 역시 분석했다. 농민항쟁이 갖는, 역사발전의 추진적인 역할을 분석할 수 있었다. 봉건적 사회구조가 어떻게 근대사회로 이행되었는지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민란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생산력의 발전과 상품 화폐 경제의 발전을 토대로 한 봉건적 사회 계급구성의 변화 실태를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