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예수회 선교사의 중국 내지 진입과 마테오리치 사망을 전후로 예수회의 선교노선 변화를 살펴보았다. 이후 이와 같은 선교노선의 변화가 중국의 유교 지식인들과 불교 승려들에게 어떤 반응으로 나타났는지를 두 차례의 ‘교안사건’과 ‘反기독교 서적’의 출간을 통해 살펴보며 이에따라 강화된 ‘儒·佛연합정서’의 배경을 교리적 측면과 세력적 측면, 그리고 불교계의 동향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통해 살펴보았을 때 예수회의 성공적인 선교와 같은 시기에 발생한 ‘反기독교 정서’가 표출된 사건은 단순히 ‘儒·天갈등’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明末사상계에서 새롭게 등장한 陽明學이 사상적인 대안의 필요성에 따라 불교와 연합정서를 형성하고 있었고, 이와 동시에 천주교라는 새로운 외래종교가 유입되면서 기존의 흐름에 편승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발생한 儒·佛·天삼교의 사상적인 충돌과정 가운데 천주교에 대한 중국 전통 종교의 전략적인 대응 측면에서 형성된 감정을 ‘儒·佛연합정서’라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儒·佛연합정서’는 천주교 선교사들의 헤게모니 장악에 따른 유교와 불교의 전략적인 대응 차원에서 형성된 감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 유교와 불교계가 공통적으로 드러낸 천주교에 대한 반감을 ‘연합정서’라고 규정한 이유는 예수회에 대한 儒·佛의 대응이 천주교라는 종교에 한정되지 않고, 서학 전체에 대해서 이루어졌으며, 그 규모가 크지 않아서 예수회 선교사들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점을통해 이후 예수회 선교사의 중국 선교 전반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닌 明末 사대부와 승려가 함께 공유했던 사상적인 분위기로 보이기 때문이다.